“골라 먹는 맛이 있어 좋지”
오후 6시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각, 뒷짐을 지고 어시장을 기웃거리는 부안읍 동중리에 사는 김 아무개(52)씨의 머릿속은 온통 생선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번에는 숭어 한 접시와 생굴 무침으로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성공을 거뒀지만 오늘 내려오는 처남댁은 회 맛이 까다롭기로 소문이 나있기 때문이다.
숭어, 광어, 우럭, 농어 등 ‘오늘은 뭐가 좋을까?’ 고민이지만 아무래도 광어가 나을 듯싶다.
자칫 특별한 걸 준비했다가 맛도 잘 모르면서 별 이상한 걸 잡아 왔다는 말을 집사람을 통해 듣기는 싫기 때문이다.
‘그래, 회는 무난하게 가고 찌개를 좋은 걸로 해야 겠어’ 라고 생각하며 맘에 드는 녀석을 찾아 나선지 10여분이 지났다.
아까부터 지켜보던 덩치 큰 남자의 한마디에 결정이 빨라진다. “찌게거리 많이 넣어 드릴께 한번 보세요”
‘광어가 다 거기서 거기겠지, 찌개 거리를 많이 넣어 준다는데 가볼까’ 뒷짐을 풀고 눈길을 돌린 곳은 자매수산이다.
생선보따리 하나, 찌개 보따리 하나, 그는 이곳에서 10만원이 넘는 생선을 구매했다.
덩치크고 눈치 빠른 서기주 사장이 운영하는 생선가게 이름은 자매수산이다. 그의 어머니와 이모, 두자매가 가게를 시작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가게나이 31년, 수백 명의 단골명단과 함께 장사하는 법, 회 뜨는 법을 물려받은 그는 활동적이고 바지런한 성격 탓에 시장 상인회 총무를 맡아 일하고 있다.
6시가 넘어서자 어시장은 새로운 사람들로 활기가 돋는다.
왁자지껄하게 한 무더기의 넥타이 부대가 시장에 들어서고 있다.
이들은 어시장 주변에 있는 변산, 늘벗, 장안, 남도, 엄벙한, 경희네, 나그네, 형제, 금강 등의 이름을 가진 식당 중 한곳을 찾아온 직장인 들이다.
아마도 퇴근 전에 단골집에 전화를 걸어 주문을 마쳤을 것이다. 예약 주문을 받은 단골식당 주인들은 그날그날에 따라 물 좋은 고기가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 거기에 손님에 따라 선호하는 회 스타일도 척척 꾀고 있다.
얇고 넓게 포를 뜨듯 썰어 놓은 회,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돼지고기처럼 두툼하게 썬 회, 적당한 굵기에 길쭉길쭉 썬 회 등 취향을 저격하는 다양한 방법을 준비해놓고 고객을 사로잡는다.
물론 회를 뜨는 사람은 식당주인이 아닌 생선가게 주인들이다.
새로운 스타일로 회를 맛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부안상설시장 내 생선가게에 들러 원하는 대로 먹어보길 권장한다.
제철 회에 개운한 생선찌개를 먹고 식당을 나오는 손님 중 일부는 집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소라나 고동 등 삶아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어패류 몇 만원치를 담아 간다.
이쑤시개를 물고 변산횟집에서 나오는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박 아무개(47세)씨는 팀 회식 메뉴를 생선 코스 요리로 정하고 어시장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준비한 코스는 얇고 넓게 썬 광어회로 식감을 돋우고 큼직큼직 두툼하게 썬 우럭회의 고소함에 삶은 소라의 쫄깃함을 더한 후 알이 꽉 찬 매콤한 서대 찌개에 갓 지은 쌀밥과 개운한 누룽지로 마무리하는 보통의 저녁회식 스타일을 정했다고 한다.
얼큰하게 소주에 젖은 그는 “어시장은 딱 정해진 메뉴가 없어서 좋아요. 그때그때 철따라 골라먹는 맛도 있고, 무엇보다 싱싱한 생선 맛을 볼 수 있어서 자주 찾지요”라고 말하고 먼저 간 일행을 쫓아 나선다. “2차는 어디여~”
식당 손님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오후 8시를 넘어서면 생선시장도 퇴근을 준비 한다.
간혹 뒤늦은 저녁을 준비하러 나온 아주머니가 죽은 지 얼마 안돼 보이는 생선 몇 마리를 싼값에 사가거나 미리 썰어둔 잡회 한 접시를 주어 담는 모습도 보인다.
청소에 정신없는 자매수산을 다시 들렀다. “이제 뭐해요?”
“내일 배들어 오는 시간이 새벽이라 얼른 가서 눈 좀 붙였다가 나가봐야죠, 주말 장사 할려면요”
도마를 씻고 수족관을 정리하는 그의 손이 빨라지면서 하나 둘 어시장의 불이 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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