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은 생명 품는 모성… 종교적 교리와 일치”

“나는 반생명과 반평화의 싹이 내 마음과 행위에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심에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촛불집회 때 차분한 목소리로 ‘부안군민 생명평화 기도문’을 낭독하는 이가 바로 ‘부안군민의 어머니’라 불리는 부안반핵대책위 공동대표 김인경(부안교당) 교무다. 그녀는 군민들의 반핵투쟁과 함께 하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을 만난 것 같아요”라고 고백했다.
원광대학교 70학번인 김인경 교무가 부안교당으로 온지는 9년째. 그 전에는 강경과 서울에서 복지관 운영을 했다. “저는 5.18 광주항쟁에 대해서도 잘 몰랐어요. 그동안 온실속 화초처럼 세상일을 외면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어요”라며 반핵싸움을 통해 큰 깨우침을 얻었다고 밝혔다.
초창기 부안의 반핵싸움은 지역 운동가들과 종교인들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특히 원불교 성지가 있는 영광지역에 핵발전소로 인한 주민들의 고초를 알고 있던 원불교 교단은 핵폐기장 부지로 ‘부안’이 거론되고부터 각종 비디오 자료들을 제시하며 주민들을 설득해 나갔다.
부안 반핵대책위 첫 모임이 부안교당에서 이뤄진 뒤 일주일후인 지난 해 7월 2일 집회에는 무려 2천여명이 모였다. 김인경 교무는 특히 지난해 7월 11일 김종규 군수가 유치신청 기자회견을 하던 날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군청 앞을 가득 메운 전경들 앞을 김인경 교무와 여성들이 스크럽을 짜서 김종규 군수에게 항의하러 들어갔던 것이다. 또한 지난해 광화문 사거리에서도 군홧발에 맞서는 부안 여성들을 보며 늘 대열의 앞에 나섰다. 부안항쟁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컸다는 것은 반핵싸움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특히 그녀는 “반핵의 정신은 근본적으로 여성들의 모성과 맞닿아 있으며,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그러한 모성은 종교적 교리와도 상통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부안의 종교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왕래가 잦다. 원래 종교인들의 모임이 있기도 했지만 반핵싸움을 겪으면서 한 집안 사람처럼 넘나든다. 이에 대해 김 교무는 “종교 집단과 교리는 다를지라도 지역사회 군민들과 함께 한다는 마음은 같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보다 종교 간에 수용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 같다”고 밝혔다.
부안항쟁이 1년 5개월이나 계속되면서 그녀는 주민들을 여전히 갈등과 고통 속에 빠트리는 권력의 횡포를 보고 다시 한번 종교인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그녀는 “저는 투쟁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저를 통해서 부안 사람들의 아픔이 위로가 된다면 좋겠어요. 그게 종교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몫이지요”라고 밝혔다.

그녀는 얼마전 <핵벌레>라는 전단지를 뿌린 혐의로 긴급체포된 주민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고 했다. 하얀 저고리, 검은 치마에 머리를 올린 김인경 교무는 영낙없는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다. ‘부안의 어머니’라 불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제가 그럴 자격이 있나요? 오히려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빈 자리를 다 채워드리지 못하니까요. 오히려 자기 일상이나 삶 전부를 버리고 열심히 싸웠던 여성들에게 그러한 영광이 돌아가야 하죠”라며 부안항쟁의 숨은 공로자들이 제대로 평가받기를 바랬다.
이향미 기자 isonghm@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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