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농촌 교육 현실에서도 아이들은 생기 넘쳐

#학교 풍경 1

아이들은 운동장에서도 진입로에서도 틈만 나면 배드민턴을 친다. 체육 수행평가를 핑계로 쉬는 시간만 되면 열심히 배드민턴을 친다. 아이들에게 10분밖에 안 되는 쉬는 시간은 너무 짧아서 운동화를 갈아 신는 시간조차 아깝다. 그래서 실내화를 신고 배드민턴을 친다.

그러다 선생님께 걸리면 종아리를 맞거나 벌점을 받지만 아이들은 씩씩하게 몸으로 때운다. 아이들은 닭털이 달린 비싼 셔틀콕은 엄두도 못 내고 연두색 플라스틱 셔틀콕을 쓴다. 천 냥 백화점에서 산 10번도 못 치고 망가지는 싸구려 채로. 그래도 마냥 즐겁다.

#학교 풍경 2

방과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하기가 싫어 몸부림치던 아이들은 리코더 연습을 하겠단다. 다른 아이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게 등나무 교실에 가서 연습을 하겠단다. “추울 텐데?” 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한다. 그리고 곧 등나무 교실에서 리코더 소리가 바람을 타고 교실로 들어온다.

‘사랑하는 나의 고~향을 한 번 떠나 온 후에~~. 날이 가고 달이 가알수록 내 맘속에 사무쳐. 자나깨나 너의 새앵각 잊어버리일 수가 없구~나.……’

그러나 곧 아이들은 빨개진 코와 더 빨개진 손을 호호 불면서 들어온다. “존나 추워”를 입마다 달고서.

#학교 풍경 3

12월의 교무실은 항상 어수선하다. 장기 순환 전보에 의해서나 개인적 사유로 학교를 옮겨야 하는 선생님들이 내신 서류를 작성하느라 분주하다. 정들자 이별인 섭섭한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에 이별의 예감으로 덩달아 마음들이 어수선해진다.

게다가 학급수가 줄어든 것도 아닌데 교육인적자원부의 교육공무원 정원 확정배정에 따라 교사의 법정 정원수가 81%로 줄어드는 바람에 한 명의 교사를 감축해야 하고, 뜬금없이 감축내신을 당하는 교사는 더욱 심란해 하고, 선생님들의 불이익을 최소화하려고 감축을 조절하려고 애쓰는 관리자도 심란하고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교사의 법정정원수는 학급당 2.2명 정도가 된다. 11학급인 경우 24명이 법정정원수다. 그런데 올해 81%로 정원수를 확정하면 교사의 정원수가 19명이 된다. 24명이 해야 할 수업을 19명이 하면 그만큼 교사가 맡아야 할 수업 시수는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 말고도 학교별로 교사의 수와는 관계없이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교사의 잡무도 당연히 늘어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상대적으로 농어촌의 소규모 학교의 학생들은 질 좋은 수업을 받을 수가 없다. 법정정원수가 준다는 것은 과학교사가 과학은 물론 국어를 겸해서 가르쳐야 하고, 미술교사가 미술교과와 함께 도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도시의 규모가 큰 학교라면 한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가 여럿이 있어서 교사의 수업 시수가 늘어나 수업의 양이 늘기는 해도 국어교사는 국어를 수학교사는 수학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교사의 정원수를 줄이는 것은 소규모 농어촌 학교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자식의 교육에 모든 것을 거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맹자의 어머니가 아니라도 이렇게 교육환경이 열악한 농어촌을 떠나고 싶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금강산도 아니고 섬진강도 아니고 채석강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곡식들이 잘 자라고 있는 논과 밭이다.

아직 봄인가 싶은데 써레질해서 잘 다듬어 놓은 정갈한 논. 보랏빛 꽃으로 가득 차 나비들을 불러모으는 장다리꽃밭. 바람에 일렁이는 생명력 넘치는 보리밭. 쳐다만 봐도 배부른 가을의 누런 황금들판. 항상 무언가 새 생명을 키워내던 논밭이 텅 빈 채 쉬고 있는 겨울의 들판마저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지런한 농부들이 만들어내는 농촌이 사라지고, 억센 손길이 만들어내는 활기찬 어촌도 사라진 이 땅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게으른 농부의 묵정밭 같고 사람 안 사는 빈집 같은 을씨년스런 우리 땅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의 맘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이 겨울에 사람 손길 끊어진 농어촌의 쓸쓸한 풍경을 떠올리는 것은 비약일까?

#학교풍경4

예기치 못했던 폭설로 학교를 하루 푹 쉬고 나온 아이들은 생기가 넘친다. 아침부터 눈싸움을 하느라 난리다. 교실과 복도까지 날아온 눈덩이로 어지럽다. 눈싸움에 쫓기는 아이들은 교무실을 피난처로 삼기도 한다. 아무리 배짱이 좋은 아이들도 교무실에서까지 눈덩이를 날리지는 못하니까. 우리 학교 교무실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아직은 학교 유일의 소도다.

점심밥 먹을 시간까지 아까워 굶고 눈싸움에 열중한 아이들은 눈뭉치로 난로불도 꺼버려서 젖은 양말과 얼어붙은 손을 녹이지도 못하고 5교시 수업을 한다. 난로불 꺼진 교실이라도 아이들이 내뿜는 온기로 따뜻하고 아늑한 교실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자장가라도 되는 양 꾸벅꾸벅 존다.

공부하라고 깨워놨더니 점심 못 먹어 배가 고프다고 투정이다. 철없고 대책 없는 아이들이지만 발그레한 생기 넘치는 볼이 정말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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