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 향기만큼 성적 나왔으면”

지나고 나면 3년이란 시간은 풀잎의 이슬이 햇볕에 마르는 시간과도 같다. 너무나도 짧지만 풀잎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3년 전 난 고등학생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한 것 없으니 말이다.

입학하던 날, 난 ‘한번 열심히 죽을힘을 다해서 공부 한다’라고 다짐을 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새로운 친구들과 사귀고 야자(야간자율학습)시간에 노는 재미로 학교를 다녔다. 그때 먹은 막대사탕 레몬 맛이 입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3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모둠수업을 했던 국어 수업도 재미있었고, ‘지수’와 ‘로그’를 처음 배울 때 이런 것도 있구나하고 흥미진지 했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생활에 차차 적응해갔다. 아침에 스쿨버스 타는 것도 10시까지 야자 하는 것도, 봄이 되면 교정에 수선화가 피는 것도, 가을이 되면 낙엽이 지는 교정도 아주 익숙한 풍경이 됐다. 내 머릿속에 남은 필름이 지워 지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셔터를 누른다.

작년 수능 때 우리는 고요히 다가오는 폭풍은 생각지도 못하고 “선배님 수능 잘 보세요” “수능 대박”을 외쳐 댔다.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갈 줄은 몰랐다. 선생님들이 ‘이제 너희들이 고3이다’ 말하실 때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저녁급식소 반찬이 궁금해졌다.

1월, 2월…. 정말 고3답게 열심히 공부했다. 3월에는 괴롭기만 했던 모의고사가 기대될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모의고사를 보았다. 이 점수가 내 수능점수일까 두려운 마음에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5월의 마지막소풍도 체육대회도 꿈만 같았던 마지막 축제도 지나갔다.

시간은 흘러 7월이 되었다. 수시 1학기라는 새로운 도전장이 우리 앞에 있었다. 그때는 부모님과도 학교선생님과도 거리감이 생겼다. 지금 와서는 별 것 아니지만 그 때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은 생각에 흘린 눈물과 한탄이 얼마나 컸던지…. 왜 그때는 그 길하나 밖에 없다고 생각했을까?

9월에는 두 번째 도전장이 찾아왔다. 수시2학기이다. 여러 군데 원서를 지원하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이때 아이들은 모이기만 해도 대학 이야기를 나눴다. 수능 한 달을 앞두고는 갈수록 마음도 담담해져서 빨리 그날이 오기만을 바랐다.

시간은 또 흘러 마지막 자습시간이 됐다. 자습실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청소를 하는데 왠지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시원섭섭한 기분이 이런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 왔다. 전날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새벽까지 뜬눈으로 지새우다 기어이 늦잠을 자고 말았다. 게다가 잊고 빠트린 안경을 가져가기 위해 경찰차를 타고 집에 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우리 가족은 동네에 도둑이 든 줄 알았다며 웃었다. 수능 분위기 제대로 낸 꼴이다.

스쿨버스를 타고 시험장으로 가는데 친구와 손을 잡고 수능 대박을 기도했다. 시험장에 들어가는 길에 장미꽃 한 송이를 받았다. ‘이 꽃향기만큼 성적이 나왔으면…’하고 소망했다.

시험장에 앉아 잘 풀리는 문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들리지 않는 외국어 듣기 평가에 초초해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 드디어 시험종료 벨이 울렸다. 가방을 챙겨 나오면서 진인사 대천명이라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해방감에 기쁘기도 하고 대학에 가서 잘 할 수 있을 지 걱정도 됐다.

12월19일 수능 성적표가 발송되는 날, 그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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