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어깨 겯고 한판 대동 굿판을 벌이자

왼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하릴없이 마당가를 서성이다 버릇처럼 산밭으로 발길을 향했다. 여름 풀 사그라든 짚검불 위로 터 오른 밀싹들이 파릇하건만, 오늘 따라 내 눈은 자꾸만 찬 바람 서성이는 텅 빈 논 바닥에 가서 꽂힌다.

퀭한 두 눈, 덥수룩한 수염, 거친 한숨들…. 사람들은 말 없이 담배만 피워 물었다. 기어히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이다. 짐작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지푸라기 한 올만한 기대마저 내버리지는 않았다. 벼랑 끝에 선 농민들이 이렇게 연일 절벽 아래 꽃같은 목숨을 내던지는데, 설마하니 생각해주는 시늉이라도 할 줄 알았던 터이다. 참으로 권력이란 가진 것 없는 민초들에게는 매정할 뿐이었다.

‘식량주권’이라 하였거든, 식량이 또한 주권이라면 스스로 먹을 것 만들기를 포기하고 곳간 열쇠까지 빼어 준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이 땅의 주인일 수 없다. 종된 나라의 백성일 수 밖에 없다. 지난 세기 일제의 종살이로 피가 말라붙은 조선 민중이 아직 흘린 피를 되채우지도 못한 채, 첨단문명과 자본이 판치는 밀레니엄 시대에 미제국의 종살이를 다시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우리 오늘을 ‘한미합방의 날’이라 부르며 머리 풀고 재를 뒤집어씀이 마땅하리라.

‘국익’을 위해 쌀이 죽어야 한다면, 농업과 농민이 꼭 죽어야만 한다면, 그래, 죽어줄 일이다. 350만 농민 모두 숨소리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줄 일이다. 그러나, 입만 열면 외쳐대는 ‘국익’이란 구호가, 경제성장의 환상이 정작 속 빈 강정임을 누가 모르랴? 부와 권력을 독차지한 1%를 위한 이익이 곧 ‘국익’이란 포장이었음을 우리는 이제껏 보아 온 것이다.

이번 쌀 대란 정국에서 정부와 그를 둘러싼 독점 권력이 내보인 속셈은 분명해졌다. 자신들에게 집중된 부와 권력을 더욱 늘리고 독점하는 것. 이를 위해 그들은 눈썹 하나 까딱 안하고 제 백성의 정수리를 향해 확인 사살의 방아쇠를 당겼다.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쌀은 수천년 동안 민족 고유의 식량이요 문화요 역사였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한들 제 삶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팽개치고서야 그 사회가 온전히 굴러갈 수는 없는 법이다. 뿌리 뽑힌 나무가 아직은 무성해 보이겠지만 잎이 시들고 가지가 마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쌀을 되살려내는 것, ‘빼앗긴 들’을 되찾는 일은 농민의 손을 넘어서 있다. 지금 피를 토해내는 농민들의 쌀사수 투쟁은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수십년간 온 몸 던진 등짐질로 우리 삶의 밑바닥을 떠받치며 살아온 농투사니들의 직관이 말해주는 이 사회의 부조화에 대한 마지막 경고의 말이다. 산으로만 향해 가는 역사의 뱃머리를 본래의 강물 흐름으로 돌려놓고야 말겠다는 결의에 찬 행동이다. 일찍기 제국의 총칼에 눌려 한 나라의 옥쇄를 내주었던 시대에도, 제 집 도성조차 버리고 멀리 강화로 의주로 도망하던 임금의 등 뒤에서도 민족의 자존을 잃지 않고 일어섰던 민중의 피는 붉고 고왔다. 오늘 농민들이 흘린 피와 눈물은 결코 한 방울도 헛되이 흐르지 않고 이 땅 아래 고이 스며들 것임을 믿는다.

역사는 깨어 있는 자들의 몫이다. 투쟁하며 일어서는 민중의 편이다. 그러니 이제, 민중이여 일어나라! 개발과 성장이라는 헛된 환상으로부터 깨어 일어나 둥글게 어깨 겯고, 춤추고 노래하며 한판 대동 굿판을 벌이자. 쌀의 부활, 노동의 부활, 짓눌려 죽은 것들과 죽어가는 것 들의 부활, 하나됨을 위한 모든 몸짓들의 부활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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