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이 부안에서 자주 만났던 인물 중에는 김아(金鴉) 김태종(金泰鍾; 1911~1952)이 있다. 필자는 『부안이야기』 19호에 ‘부안의 소설가  김태종, 총을 들다’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김태종을 살폈다. 김태종은 지주였지만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고 결국 산에서 죽음을 맞은 사람이다.
김태종은 석정의 시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현실에 대해 다른 인식을 나타냈다. 1937년 1월 3일의 일기에 “석정의 시는 현실을 떠난 아름다운 자연만을 읊고 있다. 그것이 그의 특점이기도 하고 흠점이기도 하다”고 썼다. 자연을 좋아하여 함께 어울려 산에도 가고 여러 토론도 했지만 문학을 보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석정의 시집 '슬픈목가'에 서문을 남기면서, ‘시는 인민들에 대한 관심’도 표해야 한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김아의 일기장을 열면 위의 사진에서 보듯 석정의 바람을 담은 글이 있다. 이 글에는 ‘머언 항해’와 ‘아름다운 과거’라는 문장이 눈에 띤다. 인생은 항해일 수밖에 없다. 잔물결을 만나기도 하고 큰 파도에 맞닥뜨리기도 하는 고난의 항해다. 또한 사람들이 걷는 길에는 과거라는 흔적을 남긴다. 이 개인의 역사가 과연 아름다웠는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평가가 따른다. 
또 한사람은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다. 서정주에게 <흑석고개로 보내는 시>를 '정주(廷柱)에게'라는 부제를 달아 1943년에 보낸다. 이때 신석정은 부안에 살고 있었고, 고창이 고향이었던 서정주는 1942년 아버지 장례를 치른 후 가산을 정리해 한강변 흑석정의 한 기와집으로 이사와 살고 있었다.(오마이뉴스, 2018.10.21)

흑석고개로 보내는 시
- 정주廷柱에게

 (앞 글 줄임)

눈오는 겨울밤
피비린내 나는 네 시를 읽으며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는 청년
그 청년이 바로 우리 고을에 있다

정주여
나 또한 흰 복사꽃 지듯 곱게 죽어갈 수도 없거늘
이 어둔 하늘을 무릅쓴 채
너와 같이 살으리라
나 또한 징글징글하게 살어보리라

일제강점기 말은 시에서 표현하듯 어둔 하늘이다. 이 시대에 석정은 ‘복사꽃 지듯 곱게 죽어갈 수도 없는’ 의 표현처럼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후배 서정주에게 함께 이 '어둔 하늘'을 무릅쓰고 버텨나가자고 격려하고 고무하는 뜻을 시에 담았다. 그러나 서정주는 신석정의 걱정을 외면한 채 1942년부터 해방될 때까지 흑석동에서 친일시를 쓰면서 살았다. 후세인들은 미당을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로 기억한다.
석정은 일제 말의 험한 세상을 복사꽃 지듯 살며 해방을 맞았다. 김아는 해방공간에서 친일파 청산과 자주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큰 흐름에 동승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미당은 해방 후에 친일파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권 편에 적당히 기생하면서 반성 없이 글쓰기를 계속했다.
역사의 올곧음을 행동으로 옮겼던 김태종 등을 보면서, 시대의 언어를 고민한 시인 석정 연구에 김아의 삶을 조명하는 것도 중요한 접근이라고 생각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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