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승리와 부안 주민 승리의 차이는...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의 뺨을 좌우로 후려치고도 남을 핵폐기장 투표가 끝났다. 그 투표율이 80점을 넘고 찬성률이 90점에 육박했다니 참으로 놀라운 혁명이 아닐 수 없다. 어디서들 그렇게 아교 같은 단결심이 나오고 파쇼에 가까운 응집력이 나오는 것인지 혀를 내두르다말고 두려운 마음까지 인다.

허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곳 부안으로 살러 온 나는 석 달 동안 여러 차례 가방을 쌌었다. 가까스로 국문 깨친 뒤 상경해 이 바닥 저 바닥 뒹굴며 기생해온 터라 배고픈 것 말고는 추할 것도 겁날 것 없었다. 하지만 부안에서의 석 달은 밤하늘의 달을 올려다보는 것마저 씁쓸한 심경이었다. 그대의 이마빡에 간첩이라고 쓰여 있어야 신고를 하든 말든 한다고 부안에서의 석 달은 영락없는 그 짝이었다.

상처라고 하기엔 피래미 같고, 골이라고 하기엔 너무 얕은 것이 도대체 핵폐기장 싸움 이후의 부안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것이 현실이든 허상이든 숱하게 길을 만들고 꿈꾸어 온 시인이라는 놈이, 그것도 필력 20년이 다 되어가는 놈이 그 답안지를 내리지 못한 채 당신은 찬핵이요 아니면 반핵이요 하며 미친놈처럼 묻고 있었으니 그 소갈이 오죽했겠는가.

그래, 좋다. 투표도 끝났고 경주가 승리했다. 그런데 왜 축하를 해줘야 할 이 마당에 나는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 정부는 19년 동안 9차례의 좌절 끝에 경주로 ‘올인’했다며 이제야 두 발 뻗고 있는데 어찌하여 나는 근심만 첩첩산중인 것일까. 그래, 한 곳에 너무 오래 젖어 사는 놈보다 슬몃 담 너머로 훔쳐본 놈이 때론 정확히 볼 때가 있다고 그걸 핑계삼아 안주삼아 딱 이홉들이 소주 한 병만 까기로 하자.

미안하지만 싸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겨우 거릉에서 당산으로 가는 길 하나를 냈을 뿐이다. 섭섭하게 들려도 어쩔 수 없다. 작년 겨울, 보름동안 북만주를 도보로 쏘다닐 때 만난 북간도의 노파들도 말하지 않았는가. 열아홉에 과부가 됐지만 자신의 남편이 독립운동가라고 생각해본 적 한번도 없었다고. 그땐 다 싸울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하는 말이다. 누가 나팔을 불건 퉁수를 불건 지금 화해는 어렵다. 핵폐기장 싸움 이후 그 대안마저 제시하지 못했다. 핵이 사라져야 한다면 그 바닥에 멍석을 깔든 치마를 깔든 무엇이라도 깔아야 대안에너지를 앉히든 평화를 앉히든 생명을 앉히든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묻고 싶은지도 모른다. 경주의 주민 승리와 부안의 주민 승리는 무엇이 다른가 하고?

허나 분명한 건 경주는 국가가 나서서 지휘봉을 쥐게 되지만 부안은 다르다는 점이다. 이 엄연한 현실과 이 엄청난 희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면 상처 말고 무엇이 영광으로 남아 있으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보상문제도 남아 있고, 치유도 남아 있고, 받아내야 할 사과도 남아 있고, 지자체 선거도 남아 있다. 그러니 그러니 제발 4라운드 링에서 그치지 말자. 뒤돌아서봤으나 가야 할 길이 막막하다면 달리 방도가 없지 않은가.

앞만 보고 갈 때가 단순해서 좋을 때가 있다. 힘깨나 쓰는 놈 제 힘에 넘어지고 머리깨나 쓴다는 놈 돌부리잔꾀에 무너진다고 하늘 한번 더 올려다보고 들 한번 더 건너다보자. 사람이 사람 보고 있다 지치면 그야말로 화딱지 나고 막막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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