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영화 ‘변산’을 보고 감상을 페북에 올렸다. 페북을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지만 영화 이야기에는 페친들의 방문이 드물게 많았다. 영화를 보겠다는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그동안 부안을 앞에 내건 영화가 이렇게 화재가 된 적이 있었는가. 그리고 영화의 무대가 된 몇 곳이 입에 오르내리니 거론된 곳에서는 자랑도 하고플 것이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입원했던 혜성병원, 변산초등학교 출신으로 백산고등학교 학생인 주인공들, 갯벌에서 주먹다짐을 벌였던 관선불 갯벌, 영화 내내 울림을 준 노을 등. 영화에서 자기 지역이 소개되지 않았다하여 서운 할 것은 없다. 영화는 우리를 공평하게 변산 속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시종 긴장을 풀지 않게 관객을 끌어가는 줄거리, 모처럼 만나는 많은 웃음이 있는 따뜻한 영화였다.
고시원에 살며 어렵게 도시생활을 이어가는 학수(박정민)는 래퍼가 꿈이다. 후배들은 그를 서울사람으로 알았지 부안 사람일 것은 생각도 못했다. 그만큼 그는 서울에 적응하려고 그 좁은 방의 불편함과 힘든 알바에도 앞만 보고 달린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로 낙방하고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 망설임 끝에 발이 떨어지지 않은 어려운 귀향을 결정한다.
영화는 주인공을 래퍼로 성공시키려는 성장영화는 결코 아니다. 랩은 그의 심정을 드러내는 도구이며 시(時)다. 주변에는 래퍼로 성공하고 싶었던 학수를 어렵게 만드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집안을 등한시하고 엄마의 죽음조차 챙기지 못한 건달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아들을 고향으로 불러들인다. 초등학교 때 학수의 심부름이나 하던 용대는 동네 건달이 돼 거들먹거리며 어렸을 때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고프다. 학수의 첫 사랑 미경은 세속 가치에 흔들리고, 학수를 사랑했던 선미(김고은)는 그를 고향 변산으로 내려오게 한 뒤 주인공의 망설이는 마음을 돌 직구로 마구 헤집는다. 이처럼 학수와 그 주변 인물들은 <변산>이라는 그림 속에서 좌충우돌하며 여백을 채워갔다.
그러나 ‘변산’은 단순한 과거 사랑을 얘기하기에는 할 이야기가 많은 듯하다. 바로 아버지다. 부모와의 관계는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시종 갈등과 긴장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끌고 가다가 당황스런 장면을 하나 만든다. 학수가 아버지를 때리는 장면이다. 현실에서는 힘든 장면을 영화에선 세대 간의 화해의 방법으로 사용했다. 아버지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아들에게 오히려 맞으려 애쓴다는 설정이다. 평생 건달로 살았던 아버지(장항선)는 자신의 무거운 과거를 밟고 아들이 새롭게 나아가기를 원했다. 여기엔 선미의 말이 주인공의 망설임을 파고들었다. “넌 아버지랑 똑같은 새끼야” ‘나이만 덜 먹었지 네가 아버지와 다른 것이 뭐 있는데’라고 읽힐 수 있는 가슴을 파고드는 비수다. ‘값나게 살지는 못해도 후지게는 살지 말자’던 건달이었지만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아들이 복수하듯 자신을 넘어 살기를 바랐다.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나는 몇 가지 단어는 ‘래퍼’라는 젊은이들의 성공신화, 옛사랑, 불편한 고향, 아버지, 동창생, 노을 등이다. 영화를 계기로 부안이 가진 숨은 자산들이 아름답게 드러났다. 그 중에서도 노을은 변산을 뚫는 강한 주제이고 학수와 선미를 연결 짓는 고리이다.  영화에서는 시 한 편을 수줍게 소개한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건 노을 밖에 없네

그동안 개발이라는 폭력 앞에서도 노을은 자연의 생명력으로 우리들의 가슴을 살포시 붙잡고 있었다.
“고맙다,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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