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선 /진서면


“엄마! 똑같다. 똑같다. 볼살만 빠지고 똑같다.”

사진 속 나이와 똑같은 큰아이 말에 글을 쓰려고 고민하던 나는 그때 그 시절로 쏘오옥 빠져들고 만다.

귀밑 단발머리 사진에는 여전히 선생님의 체취가 묻어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6년이 지난 5월 어느 날이었다. 고향집으로 보내온 편지 속에는 한 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이정선 학생에게.
그동안 건강하고 예쁘게 자랐겠지요? 선생님은 93년 8월에 정년퇴직하여 집에서 편히 쉬고 있단다. 80년도 졸업식 때 장학금을 전달하며 찍은 사진을 보내니 기념으로 보관하는 것도 추억이 될 것 같다. 앞으로 푸른 나무들처럼 성실하게 잘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주기 바란다.


편지 끝자락에는 선생님이 사시는 주소와 함께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었다. 그때 아버님은 선생님을 꼭 찾아뵈라며 몇 번이고 다짐을 주셨지만 찾아뵙기는커녕 전화도 드리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어릴 적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일까?

사진에서 보듯 장학금을 받은 아이답게 당당하거나 기뻐 보이지 않고 잔뜩 부어 있다. 장학금을 받은 것이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집안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친구들에게 기억되는 것이 싫었던 자존심 때문이었으리라.

다행히도 우리 부모님이 게을러서도 책임이 없어서도 아닌, 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고는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조금 덜 갖고 더 가진 게 차이나 상처로 나눠지는 엄연한 현실 앞에, 따뜻한 격려와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삶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깨어있는 어른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누구보다 먼저 그 실천을 하셨던 선생님. 적은 봉급을 쪼개서 제자들에게 꿈을 나눠주신 선생님께 늦게나마 마음을 전해야겠다. 올여름 우리 부부가 따가운 햇살 아래 함께 거둔 알토란 같은 곡식들은 물론이거니와 축복받은 부안에서 자연과 땅, 모든 생물들과 더불어 사는 훌륭한(!) 농부로 잘 살고 있다는 편지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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