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하면 으레 주변 절집에 가는 것으로 알았다. 당시에는 불교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장소가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동무들과 땀나게 뛰어 놀기에 바빴으니까. 관광객들이 사찰에 자주 가지만 내용을 잘 몰라도 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인다. 일반 상식이 부족하고, 영어 단어를 잘 못쓰거나 우리말 맞춤법을 모르면 큰일 날 것 같은 얘기를 듣는 것과는 비교가 된다. 내소사 같으면 전나무가 새롭네, 산세가 어떻고 절의 분위기를 느끼고 얘기하는 정도다. 그리고 불교신자가 아닌 타 종교인들이 사찰을 찾을 때면, ‘신앙이 아니라 문화로 접근한다’는 얘기를 덧붙이는 불편함이 지금도 조금은 남아 있다. 
  부처가 있는 대웅보전에 가는데 세 개의 문을 지난다. 일주문 · 천왕문 · 불이문이다. 사찰의 문을 차례로 통과한다는 것은 세속의 마음을 떠나 수미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부처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감을 뜻한다. 내소사 상가를 지나면 곧 만나는 건물이 일주문(一柱門)인데 땅에서 금방 솟아 오른 꽃처럼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쪽의 요금소를 만난다. 지리산의 사찰 등에서는 입장료 때문에 방문객들과 마찰도 잦다고 한다. 산을 보러 가는데 사찰 입장료를 내야 하느냐는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내소사를 통하지 않아도 산에 가는 방법들이 많아서인지 이곳은 오롯이 사찰을 보러 들어갈 수밖에 없다. 2,500 원을 내고 내소사에 입장한다.
  일주문은 두개의 기둥이 한 줄로 서있다고 해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일주(一柱)로 할까. 여기서 일주는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잊어버리고 하나의 마음으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다. 누구든지 이 일주문에 들어오면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 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일주문이 새워진 것이다.
  건축양식은 다포(多包) 형식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다포 양식을 쓰면 화려하게 보이고 처마를 위로 들어 올리는 효과가 있어 당당(堂堂)하게 보인다. 여기서 당당하다는 말은 건축에서 나온 말이지만 사람들의 당당한 풍채, 태도가 의젓하다거나, 기세를 나타내는데 쓰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일주문의 기둥은 유달리 굵다. 엄청난 지붕무게를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폭풍이 불면 무너질 수도 있다. 요즘엔 기둥 앞과 뒤에 보조 기둥을 세워 무너짐을 대비한다. 건물에서 지붕이 유난히 크게 보이는데 이런 형태의 일주문을 ‘상체비만의 건축구조’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다.(자현스님, 『사찰의 상징세계 上』) 일주문의 현판은 대개 절집의 주산(主山)이름을 함께 병기한다. 그래서 이곳은 능가산(楞伽山) 내소사(蘇來寺)라 쓰여 있다. 이 일주문은 절의 경내로 들어서는 첫 관문 이므로 불자들은 일주문에 이르러서 합장하고 법당을 향해서 공손하게 반배를 올리는 것이 의례적인 불교예절이다.
  부안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사찰은 내소사와 개암사다. 두 곳 모두 일주문을 거쳐야 절 안으로 들어가는데, 첫 문을 지나면서 갖는 느낌은 다양할 것이다. 내소사의 일주문은 그래도 소박하여 옷깃을 여미지만, 개암사의 일주문은 그 거대함에서 일단 위축이 되어 찾을 때마다 불편함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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