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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전통시장기획시리즈16-터줏대감이야기3
   

명절이나 제삿날이 아니어도 시장에 다녀온 날은 신발이나 양말 몇 켤레라도 내 몫이 있었다. 계피떡이나 순대 같은 주전부리도 맛볼 수 있었고, 그날 저녁 밥상에 갈치나 오징어 무국도 오르거나 새로운 반찬을 맛보기도 했다. 어머니의 ‘장에 댕겨올텐게 집 잘 보고 있어라’는 말이 그저 반갑기만 하던 시절을 전통시장 터줏대감들이 잠시 떠올려 본다.
전통시장 터줏대감들은 80년대까지 사람이 ‘버글버글’ 했다고 한다. 물건도 많고 사람도 많아 ‘허천나게’ 팔렸다지만 아무래도 여러 기술이 발전한 지금이 물건이 많고, 그때가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다.
전통시장 터줏대감인 토광철물점 주인은 장사를 한 지 40여년 넘었다고 한다. “여기 터가 제일 오래됐는데 양은점이어. 장사가 안 되니까 양은솥단지 갔다 놨으니까 철물점이 아니고 양은점이지. 장사가 그만큼 안 된다고. 옛날에는 사람도 많고, 구색 맞춰서 물건도 그때그때 떼어다가 관공서, 학교에도 납품하고 그랬는데…. 큰 도로에서, 교통 편한 곳에서 다 사고, 잔챙이만 팔고 있어.” 주인은 어렵다고 한숨이다.
유성지업사 주인은 예전과 달리 물건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이다. “버스가 안 들어가는 시절에 장사 시작했지. 운전하는 사람이 몇 없을 때여. 남편이 부안면허시험장 1기생이라드만. 그때는 사람이 버글버글했지. 전날 저녁에 손님이 와서 물건 언제 나와? 물어보고 내일 나온다고 하면 돈 미리 주고 갔지. 물건을 모두 사가지 못했으니까. 그때는 품목도 적고. 푹신푹신한 장판 같은 것, 주방에서 쓰는 것 이런 것 없었으니까 지금이 훨씬 많지. 인제 자식 다 갈치고, 여의살이 다 끝나고(시집 보내고) 장사가 안 되네.”
대성수예점 주인도 사람 많던 옛 시절을 들려준다. “판잣집 할 때부터 시작했지. 그때보단 지금이 물건 많지. 옛날에는 영세해서 조금밖에 없었고. 지금 이정도 물건이면 옛날에는 때부자 됐지. 지금의 1/3도 안됐을 것 같어. 70년대까지만 해도 의식주도 해결 못햇으니까. 이잣돈 빌려다 물건 사서 팔기도 하고. 인구는 많고, 물건이 풍부하지 않고. 옛날에는 학교 끝나면 학생들이 많이 들어왔어. 속옷, 양말 사러오는 여학생들이 시끌시끌 난리였어.”
사람 많은 그 시절 상인들은 서울이나 대구, 부산으로 물건 떼로 갔다. 서울은 금남여객 타고 가고 부산이나 대구는 김제나 대전까지 버스 타고 가서 다시 기차로 갈아 타고 물건을 떼어왔다. 사람은 먼저 오고 물건은 화물열차로 보내왔는데 철도청에서 짐차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큰 박스에 서너 개씩 들어온 날은 ‘점빵’에 물건 많아지고 구색도 맞고 상인들은 속이 든든했을 터다. 상인들이 이잣돈에, 발품 팔아서 물건 들여온 날에 맞춰 단골들이 찾아와 귀한 물건을 사갔다. 지금은 그때보다 물건이 서너 배 많아진 데다 점점 시골 인구가 줄다 보니 이제는 사람이 귀하다.

장에 가면 흔전만전한 생선이 듬뿍 쌓여 있고 쌀가게에는 옥같이 하얀 쌀이/ 모대기모대기 있는데도 어찌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쌀겨와 쑤시겨전을/ 찌읏찌읏 굽어보며 개미같이 옹개옹개 모여 서야 하는 것입니까?/ 쌀겨에는 쑥을 넣는 게 제일 좋다고 수근수근 주고받는 이야기가 목 놓고/ 우는 소리보다 더 가엾게 들리드구만요. -신석정 ‘귀향시초’(1952.4) 중에서

신석정 시인이 전주로 이사를 나간 후 모처럼 고향을 찾았던 모양이다. 당시 전쟁을 겪느라 모두가 궁핍하기도 했고, 시장에 쌓인 물건을 ‘찌읏찌읏’ 굽어보기만 하고 귀한 물건을 사지 못하는 고향 사람들, 우리 어머니들의 알뜰한 주머니 사정이 더욱 고단해 보였을 것이다. 신석정 시에서 그 안타까운 마음이 엿보인다. 60여년이 지나는 동안 시장도 여러 차례 바뀌었고 그때의 어머니들은 대부분 세월을 따라 떠났다. 이제 그 자식과 손주들이 상인과 손님으로 시장을 지키고 있는데, 신석정 시인이 지금의 시장을 둘러본다면 무엇이라고 했을까?
대성수예점 주인이 잠시 옛 시절을 떠올리며 건네는 말이다.
“지금은 나이 먹어가지고 현상유지지. 심심풀이 시간 보내고, 용돈 벌어 쓰고, 병원비나 내고. 아무래도 물건 많은 것이 좋지. 없을 때보다야 천지 차이지. 나가는 돈 없고, 내 가게에다 있는 물건 파니까 마음 편하지.”.   

이일형 기자  ulisa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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