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내 지나고 곰소염전 끼고 돌아 돌개 옆을 지나서 한 달음 가면 오선배가 사는 여룬개(운호)에 닿는다. 퇴직 후에 살 곳 찾아 몇 년 동안 전국을 찾아 헤매다가 이곳을 보자마자 그 날 계약했다는 동네다.
  오늘 아침에 오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3월 중순이 넘은 춘분날인데도 하늘은 진눈깨비를 흩뿌리고 있으니 그 곳 소식이 궁금했다. 눈은 얼마나 내렸는지, 운호저수지 뒷길로 하여 신선대로 가는 길에 봄꽃들은 피었는지, 선배 집 울안에는 무슨 꽃이 피었는지, 많기도 하여라. 뒷산의 변산바람꽃은 지고,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피웠다고 한다. 집에서도 산수유와 생강나무와 수선화가 피고 매화가 하나씩 터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다음 주에는 매화가 활짝 필 것이라며 전화 너머에서 꽃처럼 웃었다.
  생강나무는 잎을 살짝 비비면 향긋한 냄새가 난다. 어렸을 때는 생강냄새에 비위가 상하고 역겨웠는데 지금은 여러 맛 중에서도 야릇하게 신비하다. 잎과 가지를 말려서 생강처럼 양념으로도 썼다는 얘기도 듣는다. 산수유나무 역시 이른 봄에 노랗고 향기로운 꽃을 변산에서 자랑한다.
  선배집에 들어서려면 우선 붉은 우체통을 만나야 한다. 우체통이 대문 기둥을 대신하여 왼편에 부부의 명패가 붙어 있다. 여기에 편지를 넣어야 하는가. 선배가 어디에서 헌 것을 사다가 세워놓아서 우체통의 기능은 없다. 오늘 같이 뜬금없이 눈이 내려도 봄소식은 이 우체통에서 편지처럼 퍼져나갈 것만 같다.
  손주들에게 감성을 선물하고파 집 옆에 원두막을 하나 짓고 마당에도 그네를 두 개나 나란히 달아 놓았다. 이곳을 들르는 손주들에게, 여름 원두막의 시원함과 그네를 타며 추억도 출렁일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런데 어쩌랴, 서울서 직장 생활하는 아들은 결혼에는 입 닫고 있으니, 오늘도 원두막과 그네는 외로워라.
  선배는 지역에 관심이 많다. 운호 교회를 중심으로 모이는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려 시간을 내서 함께한다. 지역 역사 문화에도 관심이 커서 공부도 열심히 한다. 지역 사람이 되려는 부단한 노력이다. 옆에서 지켜볼 때, 선배는 귀촌에 적응한 듯 보인다. 여기에는 텃밭의 풀을 여름 내내 땀내 나게 뽑아내 채소를 키우고 자급자족하려는 노력도 컸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하며 어울림도 좋다.
  관광객들은 부안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후일담을 남긴다. 이제는 부안에 들어와 살려는 사람들의 선택지로 적당한지 경쟁하는 지역이 되었다. 이들이 귀농 · 귀촌하는데 지역에서 적절히 준비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부정적인 요소도 만만치 않으니 우선은 땅값이 비싸다는 것이다. 소수가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사려는 귀농인들은 많은데 팔려는 땅은 적으니 땅 값만 천정부지로 솟는다. 귀농인들의 정착을 돕는 유익한 프로그램의 개발도 필수다. 이들이 생산한 농작물의 판로도 열어 소득으로 연결돼야 할 것이다. 젊은 귀농인들의 자녀 교육을 위한 배려, 나이든 분들의 건강을 위해서 의료혜택을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방안도 신경써야할 부분이다.
  인류의 역사를 ‘이주민의 역사’라고 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한 곳에 나무처럼 붙박이로 살지 않고 살기 편리한 곳을 찾아다녔다는 얘기다. 이제는 부안이 살만한 땅이라고 입소문이 나고 다른 지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살 수 있는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안내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이 봄이 가기 전에 오선배의 집을 찾아 봄꽃 소식을 향기처럼 나누고, 텃밭에서 대지를 뚫고 수줍게 피어날 여린 싹을 기다리며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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