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규홍 전북교육청 인권옹호관

제2의 촛불혁명이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지역과 직업, 영역의 구분없이 억눌려 왔던 ‘절반의 사람들’, 그 여성들의 용기가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도 “‘미투’를 외친 여성들의 용기는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바로 세워달라는 간절한 호소”이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우리 정부의 성평등과 여성인권에 대한 해결의지를 믿는 국민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미투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된 운동에 대해 이름붙인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들의 용기에 사회가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지금은 이그러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또 하나의 운동을 시작했을 뿐이다.

“한국사회 여성의 9할이 겪은 일이고,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자의 범위도 그만큼 넓은 일이다. 그런데 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걸 지켜줄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믿음, 그건 오히려 성찰이 가능하고 반성도 가능하고 변화도 가능하다는 반증이다. #미투는 폭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용기를 낼, 감히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구도 없다는 절망이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한국사회 여성의 9할이 겪는 일인데 왜 좌파에는 미투가 있고, 우파에는 없냐는 물음에 대해서 다산인권센터의 박진 활동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의 부분이다. 이 글을 인용한 것은 ‘좌파냐, 우파냐’의 관심에서가 아니라 ‘지켜줄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믿음’이 용기를 내게 한다는 부분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내가 속한 조직이 나를 보호해준다는 믿음과 절차를 마련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기 때문이다.
2014년 서울시에서 시민인권보호관으로 일할 때도 서울시에 ‘성희롱 고충상담원’이나 담당 국장과의 ‘신고 핫라인’ 같은 제도가 있었지만 2010~2014년 동안 10건의 성희롱 사건이 접수되었고, 본청의 사건은 단 1건이었다. 그러나 외부의 인권 전문가인 시민인권보호관이 성희롱 사건을 전담한 후에는 5년 동안 41건이나 신고가 접수되었다.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없는 조직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은폐된다. 인사팀의 한쪽 구석에 성희롱 상담소라고 간판을 거는 방식으로는 피해 예방이나 피해자 보호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없다.
자신의 신원이 조직 내에서 알려지고, 가해자를 선처해 달라는 직간접적인 요구에 시달리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가해자의 행동에 따른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합의해 주지 않아서이고, 성희롱 피해와 관계가 없는 내용으로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려서 피해자가 부서를 옮기거나 직장을 그만두는 등의 여러 부담과 불이익을 견뎌야 한다면 그런 조직에서는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피해자가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조직내에서 용기를 낼 수가 없다.
안희정 충청남도 전 지사의 공보비서 김지은씨는 지난 5일 방송된 JTBC 인터뷰에서 "SOS를 치려고 여러 번 신호를 보냈고, 눈치챈 선배에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고, 김태신 충남도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도 "관 위주로 하는 공식적인 조직에는 사실상 직원들이 속마음을 터놓고 성폭력 피해를 상담하기 어렵다"(연합뉴스, 2018.3.6.)고 밝히기도 했다.

“인터뷰 이후에 저에게 닥쳐올 수많은 변화들 충분히 두렵다. 하지만 저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안희정 지사다. 실제로 제가 오늘 이후에도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저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게 방송이라고 생각했고. 이 방송을 통해서 국민들이 저를 좀 지켜줬으면 좋겠어서 …… 그리고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걸 안다.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

김지은씨가 jtbc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이젠 여성과는 술자리를 하지 말자, 여성은 뽑지 말자 같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여성이 두려움에 떨지 않고 동료로서 동등하게 대우받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들지를 고민할 때다. 우리 조직에는 성폭력이 없다고 자만할 게 아니라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않았다고 반성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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