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서상회을 지키는 야옹이.

“고양이들은 저한테 잘 해주면 몰래 보답을 줘요. 한 번씩 보이길래 밥을 갖다주려고 하면 숨어버리는데, 사람 없을 때 밥만 먹고 가버리잖아요. 볼 수는 없지만, 가끔 울음 소리가 들리면 우리 집을 지켜주는가 보다, 전 그렇게 믿네요.”
오랫동안 전통시장을 지켜온 주단집 할머니의 말씀이다. 예나 지금이나 시장에서 고양이는 달갑지 않다. 헤집고, 냄새나고 말짓만 부리지 예쁜 짓은 없다. 바쁜 상인들에게는 감당이 안 된다고. 더구나 수산물로 유명한 전통시장에 고양이는 더욱 골치 아픈 존재다.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간 저녁이면 고양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이 씨씨티비에 고스란히 보이는데 그 수가 십여마리는 족히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도둑고양이가, 한번은 여기 반찬 진열대까지 올라오더라고. 손님들이 기겁했다니까.”
“눈 깜짝할 새 물어간다. 저녁에 잘 덮어놓고 가야지 별 수가 없지. 그래도 고양이가 희한하게 물메기, 가오리 이런 건 또 안 먹어.”
“여름에 생선 먹고 나면 냄새나지. 저번에는 도둑고양이가 (진열대) 밑에다 고등어 대가리 두 개를 남겨놨더라구. 깨끗이 치우고, 쓰레기통 다 들여놓고 가야지...”
고양이들의 말썽에 전통시장 상인들의 볼멘소리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전통시장 안에 십년 넘게 살고 있는 고양이가 있다. 한 골목 안에서도 이를 아는 상인들이 별로 없다. ‘주인 타게 갖고(닮아 가지고)’ 워낙 얌전한 까닭에 집에서만 먹고 자느라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다는 고양이. 이름은 그냥 ‘야옹이’다.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야옹이의 외출은 5미터 거리도 채 안 되는 진양상회 앞까지 한번 돌고 들어오는 게 끝이란다. 그러다 한 번씩 아주머니가 허용하는 말썽을 피운다. 미나리 잎사귀 하나 뜯어 먹고 들어온다는 것이다. “미나리, 상추, 시금치 그런 거 가끔 뜯어 먹어. 고기나 생선은 안 먹고. 전생에 스님이었는가?” 이런 특이한 식성 덕에 시장 안에서 살 수 있었던 모양이다.
아주머니가 야옹이를 키우게 된 까닭은 쥐 때문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 쥐가 많았는데, 야옹이가 오면서 쥐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야옹이가 젊었을 때는 쥐를 잡는 활약이 대단했지만, 지금은 비록 늙었어도 냄새 때문인지 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신통한 것이 고양이들은 사람 다리에 들러붙기 마련인데 야옹이는 그러질 않는다고. 더구나 처음부터 생선이나 고기를 입에 대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보다 나서. 좋은 주인 만나서 좋은 것 먹고. 고기, 생선 안 먹고. 우유랑 사료만 먹은 게 이뻐. 얌전하게 가게 안에만 들어앉아 있잖아.” 맞은편 생선점 할머니의 칭찬이다. 바로 이웃 집 건어물점, 정육점, 생선점에 물어봐도 모두 얌전하다고 말한다.
지금도 시장에서 고양이를 키운다며 놀라는 손님도 있지만 단골들은 모두 야옹이를 알고 안부도 건넨다. 서울처럼 먼 곳에서 오랜만에 내려온 사람들이 “지금도 고양이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아주머니의 야옹이 사랑도 각별하다. 가게 문을 닫을 때는 야옹이가 따뜻하게 자라고 전기판넬도 약하게 틀어놓는다. “전에는 많이 활동하고, 수컷 고양이들도 많이 몰려왔는데 이제는 야옹이도 늙어서 밥도 잘 안 먹어. 죽으면 잘 묻어줘야지.” 제 얘기를 할 때마다 꼬리만 살랑살랑 흔든다.
상인들은 곧잘 자식에게는 다 준다고 말한다. 장사하느라 자식들이 저희들끼리 밥 먹고, 놀고, 공부하고 그랬으니 안쓰러운 마음에 입버릇이 된 말인가 보다. 자식들만 그랬을까? 눈길은 숱한 사람들이, 손님들이 오가는 가게 밖을 향해도 종일 홀로 앉은 상인의 손길에는 고양이처럼 갸르릉 거리는 말벗, 아니 손벗이라도 필요했을 것이다.
주단집 할머니의 말씀처럼 사람 몰래 보답을 준다는 야옹이가 지켜주는 것이 쥐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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