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가서 첫 번째로 광주 MBC 옛 터를 보았다. 시간이 좀 지난지라 도로 한 편에 있어 그렇게 눈에 띄진 않았지만 5.18 당시 왜곡된 보도를 내보냈다는 것을 생각하니 언론으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해 괘씸했다.
두 번째로는 상무관에 갔다. 상무관 건물을 보는 순간, 아 여긴 평범한 장소는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무관은 군의 무차별한 학살로 인해 목숨을 잃으신 분들의 시신을 임시로 안치되었던 곳이었다.
세 번째로는 옛 전남도청에 갔다. 전남도청은 5.18 최후 저항지이며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한 곳이다. 그곳엔 1980년 5월을 지켜본 나무들이 있었다. 사실 도청의 내부도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해 아쉽고 불과 30여 년 전 내가 서있었던 그 자리에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의 피가 적셔져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니 죄송하고 감사했다. 그들이 겪었던 참혹한 상황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로는 민주광장에 갔다. 그곳엔 푸른빛의 분수대와 시계탑이 있는데 5.18 당시 분수대를 연단으로 각종 집회가 열렸으며 항쟁 의지를 불태운 곳이고 시계탑은 매일 5시 18분이 되면 종이 울리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 못 들은 것이 아쉽다. 사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알고만 있었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시계탑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듣게 된다면 더욱 의미가 클 것 같다.
다섯 번째로는 전일빌딩에 갔다. 아, 전일빌딩으로 가던 중 광주 YMCA를 멀리서나마 보게 되었다. 전일빌딩은 외관부터 페인트칠이 벗겨져 세월의 흔적이 보였고 이미 헬기 사격에 관한 내용을 대충 알고 가서 1층밖에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좀 더 구석구석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기둥에 총탄이 박힌 흔적을 재현해낸 것을 보았다. 헬기를 공중에 멈춘 채 건물을 향해 사격을 했다니 이건 다 죽이겠다는 것이다. 헬기 사격 명령자는 광주 시민들을 자국민으로 보지 않고 정말 폭도라고 인식을 한 것일까? 안 그래도 광주 시민들은 충분히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군인은 위에 한 술 더 떠 헬기 사격이라니 나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화도 났다.
여섯 번째로는 5.18 민주화 운동 기록관에 갔다. 우리는 아쉽게도 1층과 6층밖에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주로 1층에 내용이 다 전시되어있어서 여태껏 들었던 설명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고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특히 전시되어 있는 사진들이 한 번씩 인터넷에서 봤었던 사진들인데도 불구하고 사진에 담겨있던 상황 등을 알고 나니 더 안타까웠다.
일곱 번째로는 5.18 자유공원을 갔다. 그곳에서 5.18민주화 운동의 전후 상황, 원인, 과정에 대해 알 수 있는 영상을 보았다. 바깥에는 영창과 내무반, 법정과 사람 모형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는데 조금 서늘하고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내무반에서는 150여 명의 사람들을 정좌 자세로 하루 종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곤봉으로 사정없이 팼다고 한다. 그리고 법정에선 그 안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앉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있던 무서운 눈빛의 헌병 모형과 재판을 하던 모형을 보고 있기가 거북했다.
여덟 번째로는 5.18구묘지 망월동 묘지에 갔다. 버스에서 내려서 아주 조금 걸었더니 눈앞에 끝이 보이지 않는 묘지들에 전부 5.18의 희생자의 묘인가 하고 많이 놀랐는데 5.18이후에 5.18정신 계승 운동을 하다 희생하신 민족 민주열사의 묘들도 안치되어있다고 해서 놀람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이곳에 묻히신 대표적인 열사로는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가 있다. 망월동 묘지는 5.18 민주화 운동 희생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인권을 주장하시다 돌아가신 분들, 6.10민주항쟁의 희생자 등 어쩌면 현재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의 부당함을 제기하셨던 분들까지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는 장소였다. 영화 택시운전사로 유명해진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머리카락, 손톱 등 유품도 이곳에 잠들어있다. 그리고 전두환 방문 비석이 있었는데 그것도 역사를 배우며 들었던 일화라 맨 처음엔 바닥에 다른 느낌이 밟히길래 뭔가 했다가 그냥 그대로 밟고 있었다. 이렇게나마 희생하신 분들께 위로가 된다면 몇 번이고 세게 밟을 것이다.
우리는 망월동 묘지를 얼추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국립 5.18 묘지에 갔다. 그곳에 있는 민주의 문을 지나 앞에 추모탑과 묘지들이 탁 트여 보이는데 그때부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고개가 절로 숙여진 채로 추모탑 앞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엄숙하고 죄송함과 감사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추모탑 앞에 도착한 뒤 나는 참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참배를 하는데 나와 나이가 비슷한 학생, 더 어린아이들도 희생되었다는 생각에 울컥하고 그들의 노력과 희생 덕에 지금 우리는 꽤 평화롭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전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시신을 찾지 못하신 분들은 영이라도 편히 잠드시라고 묘비를 세워둔 것을 보고 정말 안타까움과 화남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섞여서 느껴졌다. 다만 너무 묘비만 보느라 정작 가고 싶었던 5.18 추모관과 유영봉안소를 들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번 역사기행은 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선 5.18 희생자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은 당연한 것이고, 옛 전남도청, 국립묘지 등 잘 알려진 곳뿐만 아니라 5.18 자유공원, 민주광장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군의 헬기사격 ,집단 발포, 무차별한 폭행 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하고 먹고 살며 자국민을 지켜야 하는 군인이 그렇게 무자비하게 자국민을 사살할 수가 있을까? 더군다나 그들은 특수작전에 투입되기 위해 일반 군인들보다 더 혹독한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였다. 영화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를 보면 공수부대원에게 쫓겨 어두운 골목길로 들어가 계속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무서웠고 혹시라도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될 땐 다음 장면이 예상되어 보지 않았다. 그때를 재현한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충분히 힘든데 그걸 직접 겪은 광주 시민들은 어땠을까?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 당시 군인들이 세뇌를 당했다며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한들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에게 한 짓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물론 그 당시 군인들도 상부의 명령 때문이지 모두가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책임을 군인들이 양심고백을 통해 전두환을 비롯한 그때의 고위 간부들을 처벌하고 진실을 밝히는 것에 도움을 주는 것이 어떤가 싶다. 마침 5.18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3공수여단의 장교가 시신 암매장 장소를 지목해 한창 발굴 중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부디 남은 유가족 분들이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 앞으로는 광주 시민들의 피로 이루어 낸 민주화를 지키기 위해 성인이 되면 꼭 투표를 하고 대한민국의 주인은 우리라는 마음으로 우리나라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김다빈 부안여고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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