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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덩케르크’와 어느 역사가의 죽음
  • 이현민 전북농어촌종합지원센터장
  • 승인 2017.08.2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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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민 전북농어촌지원센터장

‘덩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연합군이 영국과 도버해협을 마주하고 있는 프랑스의 북부해안 덩케르크에서의 철수작전을 영화한 것이다. 배경이 되는 모래해안의 빼어난 풍광과 부서지는 파도, 밀려오는 포말 그리고 철수 병력을 실어 나를 배를 기다리는 연합군. 전투기의 총격과 포탄이 날아드는 해변에서는 삶과 죽음이 한 몸인 듯 공존하고 있다. 숨을 곳 없는 백사장에서 어린 젊은이들은 어쩔 줄 모른 채 쓰러져갈 뿐이다.
독일군은 모습을 드러내질 않는다. 육상에서의 총알과 바다에서의 어뢰, 비행기의 총격으로 적군과 아군은 구분된다. 생각해보니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전쟁의 논리에 인간이라는 존재와 그에 대한 연민 같은 감정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이미 죽여야 할 표적일 뿐이다. 날아드는 총알, 폭격으로 침몰하는 배, 추락하는 비행기가 전해주는 긴장감과 공포는 전쟁영화로서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지만, 딱히 전쟁영화라고 할 수도 없다. 영웅과 무용담이 아닌 실패한 작전과 철수, 오직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적군의 일방적인 공격만이 화면을 채우는 생존영화에 오히려 가깝다. 살아남을 수 있는 제한된 인원 탓에 같은 연합군은 영국과 프랑스로 나뉘어 서로를 증오한다. 결국 30만 명이 넘는 군인들은 바다를 건너온 민간선박에 의해 구조되고, 영국 국민들은 마치 승전군처럼 이들을 맞이한다. 후퇴를 불러온 군부의 무능함과 자발적인 민간인들에 의한 철수작전의 성공이라니, 역사는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마르크 블로크는 프랑스의 역사학자다. 그는 ‘모든 시민이 주권을 가지고 법 앞에 평등하다’는 공화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화국 프랑스를 지키기 위해서 종군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53세의 나이에 대학교수의 자리를 내던지고 군에 자원입대를 하였다.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2002, 까지)은 그의 유작(遺作)이다. 책에서 스스로를 “프랑스 하늘아래에서만 편히 쉴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하여 조국을 지키려 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영화에서처럼 후퇴를 거듭하여 영국까지 갔으나, 바로 배를 타고 프랑스로 돌아와서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이 책은 일종의 유서처럼 은신처에서 전쟁 직전의 프랑스 정치상황과 프랑스군의 전쟁에서의 잘못된 전략, 전술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다. 여러 단계로 구분되어 복잡하게 뒤엉킨 군 지휘체계, 지나친 경직화, 형식적인 보고 체계, 중간간부의 부재, 내부의 반목과 갈등 등. 특히 관료주의와 칸막이 행정, 특징 인맥의 주요 보직 독점에 따른 파당으로 같은 연합군끼리의 협조 체계조차 원활치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원인이 프랑스를 패배로 몰아넣었다. 프랑스의 군사지도자들은 속도전이라는 ‘현대전(戰)’에 대한 개념조차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사단의 장군이 사령부로 쓸 곳에 도착해보니, 적이 이미 그보다 먼저 와 있었다.’고 한다.
결국 전쟁의 직접적인 패인은 군사령부의 무능이었다. 모름지기 전쟁에서의 승리란 ‘현실주의, 결정력, 임기응변의 정신’에 의해서 결정된다.
1939.9 ~ 1940.5월까지 독일군은 폴란드 침공으로 병력을 동부전선에 집중하였고, 서부전선에서의 프랑스, 영국군의 침공에 상대를 하지 않은, 8개월 동안의 ‘이상한 전쟁’이라는 대치기가 있었다. 이 기간을 프랑스와 연합군은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결국 독일군의 반격에 연패하며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40년 덩케르크 철수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1940년 우리의 지휘관은 누구였는가?” 묻는다. 당시의 최고지휘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현장 지도부였다. 시간이 흘러 지도부가 되었지만, ‘지난 전쟁의 기억에 사로잡힌’ ‘젊은 시절에 참가한 전투에서의 훈장으로 장식된’ 백발의 장군들이 ‘젊은 후배들의 길을 가로 막은 채’ 전쟁을 패배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 세상은 새로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패배를 가져온 프랑스 국민들에 대한 성찰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라의 위기 앞에서 모든 성인은 동등한 의무를 져야 한다.” 독일의 탱크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게릴라전이 유일한 대항이었음에도, 프랑스 국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독일군의 침공에 대해 도시의 관리들은 비무장을 선포하고, 스스로 무장해제 하였다. 하지만 시민 대다수의 대량살상을 면하려던 이러한 결정은 ‘선의’가 아닌 ‘잘못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전쟁의 승패에 따르는 반대급부를 생각하면, 프랑스인이 지켜야 할 것은 개인의 목숨뿐만이 아니라, 지적인 자유, 문화·도덕의 균형까지 포함되어 있기에 영웅적인 전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런 결정에는 전쟁 직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양분되어 서로 반목하고, 그 결과 경쟁적으로 ‘애국심을 내다 버리게’ 만든 정치상황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였다. 부르주아들은 새로운 공화정치에 대한 반감으로, 프롤레타리아는 전쟁은 ‘부유하거나 힘 있는 자들의 일이니, 가난한 자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에 저자는 말한다. “전쟁 직전의 노동자들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정해서 하는 전쟁과 어쩔 수 없이 하는 전쟁을 구별하지 않았고, 살인과 정당방위를 구별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노동이라는 일상에 매여 있기는 하지만 ‘좋은 노동자’만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는 충분히 좋은 시민이었는가?’라고 물었어야 했다.”고 일침을 가한다.

전쟁에서 한 나라의 전력(戰力)은 국가의 강제징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시민에게 헌법이 보장하는 주권의 행사를 충실히 보장하였느냐와 법 앞에서의 평등을 위해 노력하였는가에 달려있다. 그에 따라 자발적인 병역 의무의 수행과 헌신적인 희생정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마침 광복절 아침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으로 한반도 위기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지난 역사로부터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인가? 단순히 전쟁 반대가 아니라 평화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훌륭한 시민인가? 국가는?’

저자의 유작인 이 책은 “이 글이 언젠가는 출판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라는 비장한 유언으로 시작한다. 전쟁이 끝나고 1946년 책이 출간되었을 때 저자는 세상에 없었다. 레지스탕스로 지하운동을 하다가 1944년 3월에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6월에 총살되었다.

이현민 전북농어촌종합지원센터장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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