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설/칼럼 시사칼럼
가뭄과 폭염은 자연의 선물
  • 김희정 변산공동체 대표
  • 승인 2017.07.21 10:01
  • 댓글 0
김희정 변산공동체 대표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비가 왔다. 5월초에 찔끔 왔으니 두 달 만에 비다운 비가 온 셈이다. 오랜 가뭄에 목이 바짝 말라 있던 밭작물은 그나마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바닥을 드러내던 저수지를 가득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비다. 강원도나 경기도 충청도 쪽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물난리가 나고 난리도 아닌 모양인데 이곳 변산은 어찌된 일인지 잔뜩 흐리기만 하고 시원하게 쏟아지지 않으니 사람 속만 타게 만든다.
작년에 가뭄이 심해서 농사짓는데 애를 많이 먹었는데 올해도 봄가뭄이 이리 심하니 앞으로 농사 지어 먹고 살 수 있을랑가 걱정이다. 작년에 공동체에서는 콩 일곱 마지기 들깨는 열 마지기도 넘게 심었다. 공동체는 보리, 밀, 콩, 들깨 등 잡곡농사가 많아서 여름에 비가 적당히 와 주어야 농사가 잘된다. 콩과 들깨를 심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비도 적당히 오고 자라기도 제법 잘 자랐다. 식구들과 학생들 모두 7월 뜨거운 햇볕 아래서 밭도 깨끗하게 매 놓았다.
문제는 8월이었다. 변산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작년 여름처럼 뜨거운 여름은 처음이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인 새벽과 해가 저무는 저녁이 아니면 밭에 나가는게 무서울 정도였다. 그나마 우리 사람들은 햇볕이 뜨거우면 피할 그늘도 있고 시원하게 마실 물이라도 있는데 밭에 있는 작물들은 그 뜨거운 햇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견뎌내야 했으니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는가. 당연히 잘 자랄 리가 없다. 마치 모든 작물들이 성장을 멈추어 버린 듯이 그대로 서 있었다. 고구마 순이며, 들깨는 예년에 견주면 반이나 자랐을까? 잘 자라던 콩들은 뜨거운 햇볕에 그만 꽃들이 다 타버렸다. 콩 꽃이 필 때는 비가 적당히 와주어야 알을 튼실하게 맺는데 비는 없고 햇볕만 뜨거우니 그만 꽃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모두 꼬시라져 버린 것이다. 그나마 9월에 비가 조금 와서 열매를 맺은 놈들 골라서 수확을 했는데, 1,000kg는 나와야 할 콩이 겨우 80kg을 거두는데 그쳤다. 일년 콩농사를 망쳤지만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냥 마음 편하게 주면 주는 대로 먹자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바짝 바짝 타는 콩을 보면서 몇 번을 망설였다, 물을 줄까? 말까? 물을 주자면 얼마든지 줄 수 있다. 저수지에 물은 남아 있고 물 호스만 깔면 밭까지 끌어와서 경운기로 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도 물을 주지 못한 것은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서다. 우리가 여태까지 뭐 잘 한 게 있다고. 하늘이 비를 주지 않는데,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여태껏 지어 온 죄를 조금이나마 갚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갈수록 가뭄이 심해진다는데 올해야 어떻게 버텨낸다고 하더라도 내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 여름이었다.

지구는 사람이 생겨나기 전부터 있어 왔고 지구 안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다. 우리네 사람은 그 수많은 생명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태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지구의 주인은 당연히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 왔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언제든지, 어디서나 아무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자연으로부터 빼앗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자연을 정복한 위대한 일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하고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멀쩡한 길을 놔두고 5분이나 10분 빨리 가려고 산을 두 동강 내고 심장에 구멍을 뚫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강바닥 파헤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강 속에 살고 있는 생명들의 목숨이야 아랑곳 하지 않는다. 멀쩡한 바다를 가로 막아 둑을 쌓고 세계 최대의 간척지라며 으스댄다. 캄캄해야 할 밤을 대낮처럼 밝혀 놓고 전기가 부족하니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고 난리를 친다. 사람의 손이 닿는 곳이면 무엇 하나 성하게 남아나는 것이 없다. 그러니 지구가 버텨낼 수 있을까? 사람이 자연에 한 짓을 생각하면 여태까지 버텨준 것만 해도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된 모양이다. 지구가 나 죽겄소 하고 하소연을 하고 있다. 어쩌면 몇 년째 이어지는 뜨거운 가뭄은 지구가 앓고 있는 열병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한꺼번에 쏟아지는 물벼락은 지구의 처절한 눈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네 삶을 다시 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자연을 어떻게 생각하면서 살아 왔는지.
지금처럼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30년 정도 지나면 우리나라는 동남아시아처럼 아열대기후로 변한다고 한다. 지금도 봄과 가을이 없어지고 있고 겨울은 점점 따뜻해지고 여름은 너무 뜨거워지고 있다. 기후변화는 적어도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느끼지 못할 먼 훗날의 이야기로 알았는데 어느새 내 문제가 되어버렸다. 살아있는 게 두려울 때도 있다. 이러다가 망하는 거 아니야. 그럴 리 없다고 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네 삶이 바뀌지 않으면 망해도 할 말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대통령이 아니니 국가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압력은 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산업을 당장 때려치우라고. 수많은 생명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원자력 발전소를 당장 없애라고. 자연을 파괴하는 모든 행동을 멈추라고.
자연을 파괴한 것도 사람이었고 자연을 다시 살릴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도 사람이란 생각을 한다.우리가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모든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다시 우리에게는 꽃 피는 봄이 오고 뜨거운 여름 지나 결실을 맺는 가을이 돌아오고 흰 눈 내리는 겨울에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 농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땅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농사를 짓고 하늘을 거슬러 농사를 짓지 않는 농부가 되는 것이다. 올 여름 뜨거운 햇볕과 타는 가뭄은 자연이 우리를 돌아보라 준 선물로 받아들이자.

김희정 변산공동체 대표  ibuan@ibuan.com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희정 변산공동체 대표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