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부안읍 성황산에서 촬영한 앨범 사진이다. 늦가을 오후의 따가운 햇볕이 얼굴에 쏟아진다. 학급사진, 수업광경, 특별활동사진, 학급 학생을 몇 명씩 나누어 왁자지껄 몰려다니며 사진을 찍어 앨범을 만든다. 클럽활동 사진을 찍을 때면 별 활동도 않던 부서들이 갑자기 이름을 삐죽이 내밀기도 하고, 비위 좋은 친구들은 이곳저곳에 얼굴을 밀어 넣으며 마구 낀다. 몇 명씩 묶어서 찍는 학급사진은 학교 안에서 주로 촬영하지만, 추억에 남는 사진을 담겠다는 학생들의 요구가 크면 사진사 아저씨의 배려로 성황산까지 오른다. 그러다보면 앨범 찍는 날은 하루가 공탕이다. 입시가 얼마 안 남았으니 공부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학생들의 들뜸에 잦아든다.
성황산에서는 보통 두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처럼 추도바위에서 찍으면 부안읍 전경을 담을 수 있고 또 한 곳은 선운동을 뒤 배경으로 하는 곳이다.
사진에는 주제와 부제가 있기 마련인데, 학생들이 주제이련만 오히려 뒤 배경인 읍내가 더 크게 강조되었다. 학교 건물이 눈에 띠고 다양한 모양의 지붕들도 보인다. 아직 새마을 사업을 하기 전이라서 초가집도 간간이 섞여 있다. 추수가 끝난 논밭들은 휑하니 비어 있고 실핏줄 같은 골목길은 집과 집 사이에 숨어 있다.
앨범사진은 흑백이다. 화려한 풍경을 촬영해도 정작 사진에는 색깔이 사라지고 흑과 백의 두 가지 색으로만 남는다. 흑백은 빠름에 대한 거부와 정갈함과 은근함을 담아낸다. 거기다가 향수까지 되살린다.
이제, 셀카 기능까지 갖춘 핸드폰이 우리 손 안에 있다. 셔터를 누르기만하면 온갖 생활을 칼라로 담아낼 수 있다. 우리는 사진과 칼라의 과잉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몇 장 남지 않은 흑백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며 옛 추억을 들춘다.
고향은 많이도 변했다. 고향집은 너무 오래 비워둬서 퇴락해서 무너지기도 하고 팔리기도 했다. 그곳 골목골목에 쌓인 기억들은 그리움의 넓이만큼 마음에 남아 있지만 함께 나눌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많이 변하고 오래 전 기억이라 희미해지기도 했다.
성황산을 보고 자란 향우들이 고향에 들렀다가 이곳 추도바위나 선운동 바라 뵈는 곳에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사진 한 장 찍으면 어떨까. 친구들이랑 여럿이 손잡고 오르면 더 좋겠다. 사진을 촬영하러 올랐던 그 바위가 아직도 당당히 남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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