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흠 미래영농법인 상임이사
얼마전 경영이앙직불제도(만65세 되는 농가가 농업 은퇴를 조건으로 10년간 소유농지 비례로 직불금을 받는 제도)를 통해 농지를 임대하려고 기반공사를 찾았다. 그런데 담당자의 말이 농림부에서 예산을 주지 않아 올해의 경영이앙 직불 사업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준비한 터라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이후 몇 차례 기반공사를 방문하여 사업이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봤지만 대답은 “예산을 주지 않아 추진이 안된다”는 답변뿐이었다. 정부가 농민들에게 한 약속이 농업정책인데, 도대체 말이 안된다싶어 농림부 담당 사무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를 물은 즉 똑같은 답변이 돌아 왔다. “기재부와 국회에서 예산을 편성해 주지 않아 추진이 어렵다”는 것이다.
따져보면 경영이앙직불금만이 문제가 아니다. 작년가을 쌀값 폭락 사태로부터 시작된 농업정책의 파행은 그 끝을 모르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직불금이 있다고는 하나 쌀값하락은 실질적인 농가 소득을 15% 이상 하락시켰다. 삼남지방에 불어 닥친 수발아 피해로 생산량이 평년작을 밑돌았음에도 정부는 쌀값 폭락을 수수방관했다. 농업의 수익률이 4%인 점을 감안하면 2016년도에 농민들은 단 한 푼도 돈을 벌지 못했다는 얘기다.  곧 이어 닥친 AI파동은 수조원의 국고를 하늘로 날려 버리고 수많은 양계농민들을 도산시키고도 여전히 불길을 잡지 못하고 있다. 구제역 파동도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쌀값은 떨어지고 소, 돼지, 닭 등의 축산도 연이은 자연재해 앞에서 갈 길을 못 찾고 있다. 여기에 소요되는 농가 피해와 국가 재정은 추산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애초에 이명박, 박근혜정부로 이어지는 수구 보수정권은 제대로 된 농업정책이 없었다. 이명박 정권은 5년 내내 식품산업활성화만을 외쳤고, 박근혜 정부는 6차산업이 마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떠들었지만 결국 농업의 근본이 허물어져가는 데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 10년의 농업 포기 정책 속에 농지법에서는 그린벨트 해제를 필두로 경자유전의 원칙이 사라져 버렸고, 무수한 반대 속에서도 대기업의 농업 진출은 식품산업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끊임없이 시도되었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각종 사건 사고들은 보수정권의 농업포기 정책들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이른바 ‘한국농업 무용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경쟁력 없는 농업을 포기하고 ‘계란은 미국에서, 쌀을 중국과 태국에서 돼지고기는 유럽에서, 소는 호주에서 모두 수입해서 먹고 사는 것’이 훨씬 유리하며, 국고만 축내는 직불금은 없애거나 목표가격을 낮춰 경쟁력 있는 대농들만 농사를 짓거나 아니면 아예 대기업이 농업에 진출하여 공장식으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단언컨대 참혹할 수밖에 없다. 오로지 이윤을 쫓을 뿐인 수입농산물과 자본에 농업을 맡길 경우 농산물은 일개 상품으로 전락하여 농산물의 생명인 공급 안정성과 건강 안전성은 뒷전이 되고 말 것이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농업에 과연 대기업이 사명감을 갖고 계속 투자할 수 있을까? 사드배치로 촉발된 한중 외교마찰은 그나마 부족한 농산물의 중국산 수입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거침없이 들어오는 식품관련 법과 제도, 폭락과 폭등의 끊임없는 악순환 고리에 매달려 있는 농산물 가격, 그리고 그 면피용으로 고안된 이른바 6차산업, 아래턱을 빼서 윗턱을 고이는 직불제, 수천만 마리의 가축을 살생하고도 근본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축산관련 제도가 계속되는 한, 10년쯤 뒤에는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농업도, 귀농귀촌도, 우리의 식탁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농업은 다시 칼날 위에 서 있다. 그것도 예전에 보지 못한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 있다. 어디 농업뿐이겠는가? 나라가 온통 권력 남용과 부패, 거기에 기생하는 말도 안되는 수구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터에 농업정책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이 사람들의 눈에 차기나 하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들은 한 방에 국정을 농단하고 나라를 말아 먹고 있지만 너덜너덜해진 법과 제도를 뜯어 고치고 하나씩 체계를 잡아나가는 것은 우리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탄핵결정이 끝난 뒤 봇물처럼 새로운 요구가 터져 나올 것이다.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농업의 근본을 새로 세워 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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