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주원 방송작가/소설가
‘제3의 민주혁명’으로 일컬어지는 병신년 촛불시민혁명이 지난 가을부터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계속 되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이 종로구 누하동이어서 매주 주말이면 많게는 수백만 명, 적게는 수십만 명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외치는 분노의 함성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촛불이 횃불이 되고, 횃불이 들불이 돼 무능한 정권을 퇴진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역사적 현장에 서 있거나 그 현장의 속살까지 들여다보노라면, 지난 2003년 부안반핵운동의 가슴 아픈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촛불이 횃불 되고 횃불이 들불 되어 당시의 노무현 정권의 폭정과 부안군의 반민주적이고, 반애향적이고, 반인권적인 행정에 저항하던 군민들의 애환이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니 저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울분을 주체할 수 없는 순간도 있다.
2003년 5월 8일, 나는 내 고향 위도로 방폐장이 들어간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이후, 약 2개월 동안, 정확하게 말하면 부안군이 산자부에 위도에 방폐장을 세우겠다고 유치 신청서를 제출한 그해 7월 14일 이전까지 나도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던 ‘위도지킴이’는 동분서주하며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후, 노무현 정권이 유야무야 위도 방폐장 건설계획을 스스로 포기하지 전까지 내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소중한 애향정신이 하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화개부안(花開扶安)’이었다. 동학의 제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이 부안고을에서 남겼다는 ‘화개어부안 결실어부안(花開於扶安 結實於扶安: ‘부안에서 꽃이 피고, 부안에서 결실을 맺는다’는 뜻)’에서 따온 문장이 ‘화개부안’이다. 화개부안은 오늘도 내 가슴 속에 똬리를 틀고 들어 앉아 내 의식을 지배한다. 그래도 내버려 두는 것은 화개부안은 내가 진정으로 받들고 싶은 부안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죽창과 횃불, 그리고 농기구 등을 손에 들고 목숨을 걸고 제폭구민을 외치던 동학동민혁명 시절에 아마 부안인들도 화개부안을 애향과 애국정신의 기본으로 삼았을지 모른다. 그나저나 동학 120주년이 벌써 지났건만 왜 부안엔 아직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진정한 봄은 오지 않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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