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부안에 시민사회단체가 출범했다. ‘민의를 반영하는 선거법 개혁 부안행동’이라는 다소 긴 이름의 단체는 부안의 시민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몰아올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단체가 활발하는 활동하는 것은 그 사회를 활성화시키는 데 결정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시민들의 조직이라고 언급한 것도 같은 취지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욕망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욕망을 제어하기 위해서도 시민사회는 필요하다. 사회적 규범과 행동 속에 스스로 참여하는 과정이 개인적 삶을 단순한 욕망과 생존이 가치있는 삶으로 전환해 간다.
권력 집단은 그 내부에 힘이 집중되어 있어 부정하게 권력을 행사하거나 부패할 소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런 부패와 부정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은 개인보다는 공적인 힘을 가진 시민사회에게 더 맞는 역할이다.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살기 좋은 나라의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시민사회의 성장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삶이나 국가적인 삶에 종속되지 않고, 광범위하고 다양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이 그 사회를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들고 있다.
부안에는 많은 단체가 있다. 그런데 그 조직들은 시민사회단체가 아니라, 이익단체 혹은 친목단체들이 대부분이다. 이익단체는 개인을 확대한 것에 불과하다. 친목단체는 아무리 많아도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조직이 많아지면 사회적인 목소리가 커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영향력있는 개인의 목소리가 더 커진다.
시민사회단체는 이와는 다르다. 목소리가 사회적이다. 회원 개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포함된 사회 자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목소리를 낸다. 여기에서는 이익이라는 것이 가치와 정의라는 형태로 전개된다. 그래서 이런 조직의 확대는 그 자체로 사회적인 가치를 높여줄 수 있다.
오랜 역사적 핍박 속에서 부안 군민들은 시민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함이 많은 것 같다. 동학에 대한 수십년의 피비린내 나는 핍박, 치떨리는 일제 시대,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치하에서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자행되었던 진보적 지식인에 대한 학살, 이런 기억이 사회문화 속에 배어 있어 시민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자기도 모르게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가 오고 있다. 동학의 사상이 실현되고, 대한민국이 친일 잔재를 청산하며 진정하게 독립하고, 좌우대립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는 희망이 커지고 있다. 그런 새로운 세상은 오직 군민들이 시민사회의 광장에 직접 나서야 가능하다.
새로운 시민사회단체가 봄바람에 보리 자라듯 쑥쑥 잘 커 아픈 기억들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천년의 토대를 가꿔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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