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최재흔 지부장

지난달 말 1차로 발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3천90명의 명단으로 인해 사회적 파장이 크다. 200여명의 친일인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전북에서도 채만식·서정주 등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포함돼 이에 따른 논란도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군산에서는 그간 친일논란으로 갈등을 빚었던 채만식문학상 공모전을 취소하는가 하면, 고창에서는 서정주의 미당시문학관 폐쇄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는 광복 60주년을 맞았지만 일제의 멍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주소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이에 지역에서 친일청산 작업에 앞장서온 최재흔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에게 친일인명사전의 의미와 현재의 논란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 친일인명사전, 어떤 의미를 가지나?

= 해방 60년만의 역사 정리작업이고, 정부가 아닌 학자와 민간단체에서 주도적으로 역사적 잣대에 따라 엄격하게 친일인명사전을 수록한 것에 의미가 있다. 많은 친일인사들이 이미 세상을 떴고 후손세대로 넘어왔지만 우리가 당한 치욕의 진상과 그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위안부, 강제징용자 등 식민지로 인해 고통 받았던 아픈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고, 진실이 밝혀지는 가운데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다.

- 정부에서도 친일진상규명법을 마련했는데, 민간단체에서 주도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학문과 역사적인 입장에서 정리할 수 있다. 작년에 친일진상규명법에 의해 규명위원회가 출범했으나 정파간 논리로 타협의 대상이 돼버렸고, 그 때문에 공정한 친일규명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에 민간단체가 그간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공정하고 엄격한 친일진상규명을 하고자 한 것이다.

- 일부에서는 현 정부의 정치적인 옹호세력이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는데?

= 친일인명사전은 2002년부터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할 당시 김대중 정권에게 ‘만주지역 일제통치를 연구한다’는 거짓명분으로 예산을 받아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참여정부 때 다시 신청하니까 전액 삭감됐다. 그래서 네티즌들이 모금운동을 시작했고 14일만에 7억5천만원이 모아졌다. 정권이 아닌 많은 국민들의 성원으로 친일청산을 위한 작업이 이뤄진 것이다.

- 채만식, 서정주 등 친일인명사전에 선정된 지역 친일문학인사 같은 경우, 역사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그들의 작품과 그들 개인의 친일업적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들의 작품은 앞으로 어떻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 지금까지는 친일문학 인사들의 공적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다보니 그들에게 문화권력을 주게 됐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부끄러운 친일행적은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합리화시키고 미화시켰다. 그들 밑에서 배웠던 사람들도 그런 문화권력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일방적으로 좋은 점만 부각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친일행적 하나하나가 밝혀지기 때문에 과거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받아야 한다.

- 두 문학인의 경우 자신의 작품을 통해 친일행적을 고백한 바 있다. 또 둘의 죄질이 다르다는 주장도 있는데, 친일인사라는 잣대만으로 전부가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 이력도 구분되어 비판돼야 하지 않나?

= 우리의 입장은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이라는 글 역시 반성의 글이라기보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본다. 또 서정주는 종천순일(從天順日)이라는 논리를 펴며 여러 차례 친일행적을 고백한 바 있지만 오히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피력해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기도 했다. 또 서정주는 정치권력에 유착하면서 문화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 전두환 전 정권을 찬양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정도도 다르다. 그러나 작품활동을 통해 반민족 행위를 한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군산과 고창 등은 지자체가 나서서 주민들의 혈세로 그들을 기념하는 행사를 해선 안된다는 기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고, 그런 뜻에서 군산시의 채만식 문학상 취소를 적극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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