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완우 기자
세상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대상을 분류하거나 구분 지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방식과 목적에 따라 다양한 분류가 있을 수 있으나 때론 남성과 여성으로 양분해야 할 필요와 당위성으로 인해 간결하게 나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인간이라는 이름의 남성과 여성이 존재한다.
한국사회에는 한국남성과 한국여성이, 각 지역에는 그 지역남성과 지역여성이 존재한다.
요즘은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로 인해 분야를 막론하고 그 활동범위와 역할이 참으로 지대하다. 특히 교육 분야나 학원사업 분야에서는 남성이 역차별 당한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무대에서 떨어진 지역에 사는 여성들은 그 지위에 있어 현저히 낮게 자리매김 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부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A씨는 대학졸업 후 근 20년 가까이 법무법인에서 일하고 있는데 연로하신 분들의 여성차별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상담을 위해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분명히 본인이 업무 중인데도 휘둘러보며 “아무도 없네”라는 말을 하곤 한다고 한다. 여성들은 전문적인 상담능력이 떨어질 거라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하더라도 이 한 마디에 편견 어린 지역정서가 녹아있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지속적으로 오는 상담자일 경우 업무능력을 인정받아 업무처리에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여성편견의 정도가 우려되는 수준임은 틀림없다.
실제로 업무능력과 관계없이 경력자인 자신보다 신입인 남자직원이 월급을 더 받아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B씨, 30대임에도 남편이 고압적이고 살림과 육아는 여성 몫이라며 도와주지 않아서 속상하다는 C씨......
지역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핵심 축은 공동체이다.
특히 부안지역은 농경과 어업을 기반산업으로 하고 있어 지역사회 특유의 끈끈한 인맥으로 이어진 공동체의 역할을 빼고서는 지역사회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지역공동체는 연대의식을 높이고 친목도모의 목적으로 시절에 맞춰 행사를 갖곤 하는데 그때마다 음식을 장만하여 나눠 먹는다.
이때 귀농, 귀촌한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일중 하나는 식사와 환담을 하는 구성원들의 자리배치이다. 누가 지정해주지 않았는데도 남성과 여성이 분리되어 앉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 또한 여성들 옆에 끼어 앉아 식사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목격할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앉은 여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남성들 틈에 끼여 어색한 침묵을 견뎌낼 각오를 해야만 한다.
전주에서 태어나 도시권에서 살다가 몇 년 전 귀농한 D씨는 “함께 즐겨야 함에도 지역에서 여성은 일손 거두는 존재로만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과 여성들이 인격적으로 대우 받지 못하고 남성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들러리로 여겨지는 것 같아 모임이 즐겁지 않다”고 속내를 표현했다.
귀농하여 30년째 살고 있는 E씨 또한 “90년대 이곳에 와보니 여성이 가사노동, 육아, 농업노동 등을 모두 하지만 경제권, 발언권이 전혀 없어서 황당했으나 이젠 많이 무뎌졌다”고 허탈해했다.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와 닿는 현실이 이와 같다면 공직이나 전문직 분포는 어떠한지 알아 봤다.
부안지역의 공직을 살펴보면 일단 군정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으로는 장은아 군의원이 유일하다. 부안군청 자치행정과 인사혁신팀이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6급 이상 직위에 있는 공무원은 66명으로써 전체 651명 중 10%내외이고 5급 이상은 35명 중 2명인 6%내외로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 수치는 급격히 낮아진다.
농협이사 또한 여성임원 의무할당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2014년 기준으로 그 비율은 4.6%에 불과해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부안농협의 이사는 모두 16명인데 그 중 여성은 단 1명으로 이 또한 6%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조직 내에서 유효한 변화를 얻기 위해 필요한 임계질량(critical mass)은 30%라는 결론이 도출된 바 있는데 여성에 대한 편견을 제거하기에 필요한 수가 되려면 적어도 그 비율이 30%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여성쿼터제 도입은 기업의 이윤추구에 긍정적 효과를 미쳐 영업이익이 평균보다 거의 2배 수준 높은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능력을 갖춘 여성들이 임원으로 진출함으로써 사회적 기회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남성과 똑같이 교육받은 전문 인력이 능력의 차이가 아닌 단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도태된다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특혜를 받고자 한다면 그 또한 지탄받아 마땅한 발상이다.
하지만 남성과 같은 수준의 능력을 갖춘 인재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받지 못한다면 그 사회의 구성원 절반 이상은 불만족하고 있음에 우리의 시각을 돌려야 한다.
유난히 ‘나’ ‘너’보다 ‘우리’가 강조되는 게 지역사회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우리’라는 이름 아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여성을 홀대하고 여성스스로 패배주의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시점이다.
남성들은 돌아보라.
가정에서 설거지를 할 때 뭐라고들 하시는가?
“내가 설거지 할게”인가? “내가 설거지 해줄게”인가?
오늘도 이 지역 여성들은 이런 내용의 전화를 수시로 받고 있다.
“다른 직원 없나요?”, “여직원이 그러는데요......”
우리의 치우친 생각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인식하고 자각하는 순간부터 변화는 서서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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