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경
박근혜씨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전체 300명의 국회의원 중 234명이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정치권은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단죄에 지지부진하였으나,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힘은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성과를 이루어 내었다. 하지만 탄핵소추안 가결은 정치개혁, 사회개혁을 위한 첫 걸음일 뿐 종착지가 아니다. 촛불혁명을 이뤄낸 시민들은 헌법재판소가 최대한 빠르게 탄핵심판절차를 끝낼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고, 박근혜씨와 그 부역자들이 구속될 때까지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시는 소수 권력자들과 재벌들이 대중을 통치, 지배할 수 없도록 사회구조를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어야 하나”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다면, 87년의 과오가 되풀이 될 수도 있다. 정의로운 사회,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좋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다고 오는 것이 아니다. 대의기구의 대표를 시민들이 상시적으로 감시하고, 시민의 요구가 대표를 통해 구현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의 힘으로 대통령 탄핵의 시동을 건 시점에서, 시민이 참여하는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이 중요하게 이야기되고 있다.
 우선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국회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국회 구성 비율은 민의대로 이루어질까?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37.5%의 정당득표율로 전체의석의 절반이 넘는 153석을 차지했다. 지역에서 1등을 차지하면 국회의원이 되는 소선거구제 탓이다. 이러한 선거제도는 양당체제를 고착화시킨다. 40%을 밑도는 정당지지율로 둘 중 하나의 정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겨우 몇 퍼센트의 차이로 대통령이 갈린다. 거대 양당 이외의 다른 의견을 가진 정치세력은 국회에 입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흔히 행복지수가 높다고 알려진 핀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같은 나라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의회를 구성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전체 의석수를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제도다. 유권자 1명이 지역출마자에게 1표, 정당에 1표를 행사한다. 그런 다음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한다. 전체 의석을 100석이라고 가정해 보자. A당이 선거에서 30%의 정당 득표율을 얻어 30석을 확보했다. 그리고 A당 후보로 지역구에 출마한 사람 중 20명이 당선했다. 그러면 A정당의 전체 의석수 30석 중 지역구는 20석, 비례대표는 10석이 된다. 지역구 선거도 병행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자기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을 국회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국회의원 구성 비율은 각 정당의 득표율과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다당제 정치를 낳는다. 다당제가 들어서면 정당들이 표를 얻기 위해 정책으로 경쟁한다. 정책으로 유권자에게 호소한다. 한 정당이 독주를 못하니까 다양한 정당의 연립정부가 구성된다.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정당들이 국회에 들어가면서 노동자, 농민, 그리고 약자들의 목소리를 정치에 깊숙이 반영할 수 있다. 승자독식의 정치판에서는 우리가 아무리 투표를 잘한다고 해도, 선거로 권력을 가진 집단들에게 폭력적인 통치를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한을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다양한 정치세력이 국회를 구성할 수 있는, 독선이 아니라 연대로 정책을 실현할 수밖에 없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정치권에게 선거제도 개혁을 맡겨서는 안 된다. 선거제도개혁을 원하는 다양한 정당 및 시민단체들의 연대가 필요하고, 여론을 확산시켜 많은 국민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장점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이 국민발안권을 이용해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 법률의 한계로 국민발안권은 불가능한 상태이므로, 강력한 민의를 모아내서 정치권을 압박, 설득하여 선거제도를 바꿔내야 한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개헌이다. 혁명적인 격동기에 개헌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박근혜씨와 새누리당에서는 국정농단사태가 불거지면서 개헌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국회 안에 개헌에 동의하는 다양한 세력을 묶어 정계개편을 시도해 권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속셈이다. 지금 헌법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0년 만에 시도되는 개헌을 정치권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제냐, 의원내각제냐 하는 문제는 부차적이다. 짧은 시간 안에 개헌을 서두른다면, 그리고 정치권 안에서만 논의된다면, 시민의 뜻과는 상관없이 기존 정치세력들 끼리 권력을 나눠 먹는 개헌이 될 수밖에 없다. 권력을 정치인들 사이에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가 아니라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아이슬란드처럼 시민대표와 전문가들이 헌법 초안을 만드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여 87년처럼 헌법개정특위를 국회에 구성하더라도, 특위에서 헌법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광범하게 개헌 제안을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모의헌법제정회의 같은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양한 집단에서 헌법제안을 도출하고 그 안들을 가지고 국회에서 초안을 구성하면 된다. 개헌공청회를 부문별, 지역별로 열어서 아래에서 위로 의견을 수렴해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헌법 개정 과정에서 다양하게 국민들을 참여시키는 것은 민주시민을 교육하는 과정을 겸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헌법은 정치 중심, 권력 중심의 헌법에서 벗어나서 공동체 구성원의 삶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헌법의 핵심 가치는 생명, 분권, 자치, 환경, 평화가 되어야 한다. 개헌은 더 낳은 미래를 향하는 개혁과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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