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성 서광약국 약사
삼성의 황태자에서 황제로 등극한 이재용의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은 우리나라 상속관련 법률의 발전과 그 궤를 함께 한다. 법과 제도의 미비함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은 후에야 정부는 법과 제도의 뚫린 구멍들을 손질하기 바빴다. 다른 재벌들도 편법으로 통하는 문이 닫히기 전에 서둘러서 ‘삼성 따라하기’를 통해 그들의 2세, 3세에게 부를 세습해주었다.
28세에 아버지 이건희로부터 증여받은 60억 원 중 증여세 16억 원을 납부하고 남은 44억 원으로 시작한 이재용의 편법, 탈법을 통한 경영권 승계 작전은 정권이 수차례 바뀌는 과정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착실하게 진행되었다. 마지막 고비로 여겨졌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그는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게 되었다. 44억 원으로 시작한 이재용의 재산은 현재 8조에서 10조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되며 그 중에서 자발적으로 낸 증여세는 앞에서 말한 16억 원이 전부이다. 상속, 증여 금액이 30억 원이 넘을 경우 최고세율 50%을 적용받는다. 그래서 설령 공제를 받는다고 해도 삼성은 이건희 경우에 이어서 또다시 수조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부의 세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세금이라는 제도를 통한 부의 재분배기능이라는 국가의 기능을 부정한 것이다. 한 해 영업이익이 26조인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가 되기 위한 두 회사의 합병에 있어서 삼성은 최순실이라는 꼭두각시와 그 꼭두각시의 아바타인 박근혜가 필요했다. 결국 박근혜, 최순실이 권력자인양 행세하도록 판을 깔아주고 꼭두각시 인형을 움직이는 인형술사인 삼성 이재용이 엄청난 실속을 챙긴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인 것이다. 고비마다 곳곳에서 제2, 제3의 최순실은 있었다. 정부의 관료, 검찰과 법원, 언론사 그리고 국회의원들도 권력 놀음에 취해서 흥청거릴 때 삼성은 일부러 빵부스러기를 흘리며 꼭두각시 인형들을 조종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은 부정한 권력과 결탁해서 자신들의 민원을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그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몫을 어떻게 빼앗아 나누어 가져갔는지가 이번 박근혜 탄핵 국면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 같은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행위들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이 나라가 굴러가는 시스템을 반드시 새롭게 해야만 한다는 자각으로 이어지고 지난 주말의 230만이 넘는 촛불민심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탄핵의 시계는 돌아가고 있다. 탄핵의 부결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럼 이제 박근혜 퇴진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의미를 되새겨보자. 지난 수십 년간 작동되어 왔던 낡은 시스템, 낡은 관행, 잘못된 폐습, 그리고 부정부패 이런 것들이 한 번에 청산되고 제거되어야 한다는 열망이 촛불 속에 담겨 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위임된 권력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남용되지 않고 온전히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의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위해 사용되는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바람을 담은 촛불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민주주의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부패지수가 낮은 나라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  이는 무작정 따라 하기가 아닌 우리에게 적합한 모델 구상을 위한 영감이나 힌트를 얻자는 이야기다.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은 다당제를 정치구조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선거제도로 가지고 있다. 다당제는 여러 정당이 국회에 진입한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연동형비례대표제가 필수적이다.
정당득표율과 국회의 의석배분율이 같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논리이다. 유권자의 1%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1%의 의석을 차지하고 30%의 지지를 받는 정당은 30%의 의석을 차지하는 민의를 충분히 반영한 의회 구성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선거제도의 모순 때문에 당연한 일들이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고자 노력한 곳이 북유럽 복지국가들과 독일, 뉴질랜드 같은 나라들이다. 캐나다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고자 국민적 논의를 거치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를 돌아보면 부산, 울산, 경남지역의 경우 새누리당은 51%의 득표를 했음에도 의석의 92%를 차지했고 반면 민주당은 25%의 득표율로 7%의 의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한 정치연구소에서 분석한 결과를 보면 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연동형비례대표제를 도입을 전제로 의석수를 계산하면 새누리당이 국회의석의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고 야권의 의석이 더 많은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이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4대강 사업, 방산비리, 자원외교, 형님예산 같은 권력형 부정부패를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이렇듯 시민들의 민주적인 정치적 의사 결정은 철저히 왜곡되었고 이런 방식으로 현재의 기득권체제는 유지되어 왔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국회에서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두고 선거제도 개편을 오랫동안 논의했으나 결국은 고양이들에게 생선 맡긴 격이 되고 말았다. 중앙선관위마저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한 비례대표의 확대를 건의했음에도 지역구 축소를 염려한 국회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현행 지역구를 줄이지 말고 비례대표를 지역구 의원수와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국회의원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국민적인 반발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하지만 “정치가 어떻게 바뀌어야 내 삶이 바뀌는가?”에 대한 학습이 광화문 광장과 온라인상에서 엄청난 정보가 오가며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의원의 숫자가 늘어나면 그 만큼 국회의원 개인에게 돌아가는 특권은 줄어드는 것이다. 특권을 내려놓은 더 많은 농민, 선생님, 어부, 노동자, 장애인 같은 각 분야의 전문 국회의원들이 좀 더 세밀하게 나눠진 위원회에 들어가서 자신의 이익을 충실히 반영하는 정책을 설계하고 예산을 심의하고 국가기관을 감시하는 행동들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수박 겉핥기식의 예산심의 대신 좀 더 정밀한 예산 심의를 통해 내가 어렵게 낸 세금을 누군가가 훔쳐가지 못하게 막고 온전히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나의 이웃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만 있다면 1억 4천만 원의 국회의원 세비와 그 보좌관들에게 주는 급여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러면 앞서 언급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길까?
첫째 특정정당이 과반을 넘는 의석을 차지하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50%가 넘는 지지를 얻는 정당은 거의 없다. 그래서 각 당들은 자신들의 정책과 유사한 정책을 가진 당들과 연합을 하게 된다. 둘째 2중 3중으로 견제되는 권력은 주고 받기식의 부패를 근절하고 권력남용을 못하게 한다. 셋째 각 정당들은 정당득표를 올리기 위해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들을 적극 발굴해서 정책경쟁을 하게 된다. 넷째 그동안 정치권에 낄 수 없었던 계층과 직능들도 의회에 진입해서 자신들의 의견을 이슈화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물을 수 있게 된다. 다섯째 그렇게 함으로서 지금과 같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어온 지역 구도를 깨뜨릴 수 있다.
박근혜퇴진 이후 곧바로 치러질 대선에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주장하며 개헌에 동의하는 세력들을 규합해서 제3지대니 제4지대니 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다. ‘불난 집에 군밤 구워먹기’라는 지적이 딱 들어맞는다. 선거법 개정 없이 헌법을 개정하면 제왕적 대통령 대신 제왕적 총리가 탄생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오히려 지역구의 세습같은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정말로 개헌이 필요하다면 기성 정치권에 맡기기 보다는 촛불의 힘을 담아 “시민의회구성” 을 통해 개헌에 대한 논의는 중장기적 과제로 넘기고 현 시점에서는 올바른 정치개혁을 위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법 개정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라 생각된다.
그래야만 공정한 기회와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살맛나는 세상을 위한 법적, 제도적 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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