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부안읍


아내가 옷장 깊숙이 묻혀있던 액자를 찾아냈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느라 정신없이 살다보니 한동안 잊고 지냈던 겨울날의 추억에 수줍어하면서도 환한 얼굴빛이다.
그때가 언제였을까. 바로 엊그제 같은데 20년이 샛강처럼 흘러버렸다. 이 사진은 그날의 흔적이다. 정확히 20년 전 12월 22일,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에 참석하기 위해 들른 변산해수욕장에서 동생이 담아준 것이다.

5년의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리던 날. 그날 내린 폭설로 우리의 결혼식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말았다. 느닷없는 폭설로 장인·장모님과 하객들이 결혼식 시각에 도착할 수 없었던 것. 예식장은 다음 차례 결혼식이 예정된 사람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꽃처럼 피어나야 할 아내는 그날 무던히도 울었다.

한 시간 반을 기다린 뒤에야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의 결혼식은 치러졌고, 이 사진을 찍을 땐 아수라장이던 분위기가 한 풀 꺾여 잠시 숨을 고를 때다. 평소에 사진 찍는 걸 좋아했지만 찍혀본 일이 없는 나는 어쩐지 어색한 표정이다. 그래도 아내는 여러 사진 중 둘 다 가장 예쁘게 나온 것이라며 액자로 만들었고 이 액자는 한동안 우리 부부의 신혼 방을 장식해주었다.

가진 것 별로 없이 시작한 둘만의 외지생활. 쥐꼬리만 한 월급에 집안행사는 왜 그리도 많았던지! 그때마다 생색내기로 돈을 붓다보니 우리 부부는 여러 날을 궁핍 속에서 지내야 했다. 그즈음 사랑의 씨앗들이 태어났고, 아이들 챙기기에 바빴다. 그래도 우리는 누가 더 많은 짐을 지고 가는가를 따지기 보다는 조금씩 덜어주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무럭무럭 자라주는 아이들이 가져오는 기쁜 일, 슬픈 일 등 새로운 것들에 놀라워 하다 보니, 아내의 변화에 대해서는 미처 남편의 눈길과 관심이 닿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동갑내기 아내의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해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함께 지내온 시간이 벌써 이만큼 흘렀나 싶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었다.

올해 큰딸이 대학생이 됐고, 몇 달 뒤면 우리 부부도 결혼 20주년을 맞는다. 사진 속의 나는 사진 속의 아내에게 “지금보다 더 낫게, 맘 편하게 살 수 있게 하겠다”며 프러포즈를 했었지. 그러나 나는 그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오늘 아내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앞으로는 작은 약속 하나라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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