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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없는 세상을 위한 일본 수학여행
  • 김희정 변산공동체학교 교장
  • 승인 2016.06.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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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3일부터 27일까지 변산공동체학교 학생 14명, 어른 식구 3명, 원불교 환경연대에서 일하고 있는 김복녀 선생님, 이렇게 모두 열여덟 명이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왔습니다. 살림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농촌학교에서 일본까지 수학여행을 가다니, 살다보니 이런 날도 다 있네요. 우리나라도 아닌 일본으로 우리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가게 된 까닭은 이렇습니다.
우리 부안 주민들 중에는 십년이 넘게 지났지만 지금도 핵폐기장 반대 싸움을 마치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많은 군민들이 일 년 동안 생계를 내팽개치고 핵폐기장 반대 싸움을 하였지요. 우리 군민들의 처절한 싸움이 일본까지 전해졌는지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 반대와 핵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는 할머니 두 분이 부안까지 직접 찾아와서 우리 주민들의 싸움을 지지하고 틈틈이 모은 돈을 우리 주민들 싸우는데 보태 쓰라고 내어 주셨지요. 두 분 할머니는 밤이면 밤마다 열리는 부안 주민들의 촛불집회가 너무 감명 깊었다면서 그 뒤로 한국에 올 일이 있으면 가끔씩 부안에 들러 가시기도 했습니다.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두 분이 한국에 다시 오셨습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을 만나고, 반핵운동을 하는 분들을 격려하면서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으로 반드시 이 지구에서 핵을 없애야 한다고 하셨지요.
핵폐기장 싸움이 한창일 때 뵙고 한참 만에 다시 만났는데 사와무라 선생님이 우리 공동체 아이들을 일본에 초청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일본까지 수학여행을 가는 게 쉽지 않은데 사와무라 선생님은 일본까지만 오면 일본에서의 모든 여행은 선생님이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시네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지진으로 폭발해서 아이들이 일본으로 여행을 가도 괜찮을까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우리를 초청하신 선생님의 간절한 바람을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들도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많이 들떠 있기도 했구요. 일본으로 떠나기 한 달 전에는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서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방문하기로 한 시모노세키와 히로시마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아서 지난달 23일에 부산에서 시모노세키로 가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룻 밤을 배에서 묶고 시모노세키에 도착했는데 아침 일찍 사와무라 선생님과 반핵운동을 하는 친구분들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건네주신 도시락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히로시마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일본은 이번에 처음 가 보았는데 도시가 참 깔끔했습니다. 길거리에 쓰레기도 보이지 않고 건물들도 화려한 색이 아니라 단순한 색으로 지어졌습니다. 히로시마가 아주 큰 도시가 아니라서 그런지 그다지 높은 건물도 없고 거리에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주 작은 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도시에서 돌아다니는 자동차 중에 절반은 아주 작은 차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차를 사면 큰 차를 원하는데 일본은 큰 차보다는 작은 차를 더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 양복을 입은 회사원, 치마를 입은 아가씨, 시장을 보러 가는 엄마, 여러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도 한 손에 우산을 받쳐 들고 아주 자연스럽게 타더라구요. 우리나라 도시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그리고 이분들은 자동차도 그렇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그렇고 웬만해서는 비켜달라고 소리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 사람이 비켜 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립니다. 이것이 ‘일본사람들의 문화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려하게 꾸미기보다는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고, 내가 가는 길이 불편하니까 얼른 비켜나라고 큰소리치기 보다는 남이 비켜 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가는 것’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국민들이 어떻게 남의 나라를 36년이나 강제로 짓밟고 전쟁을 일으켜 많은 생명을 해쳤는데도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지.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일본에 사는 서민들은 참 가난하답니다. 한 시간 일하고 받는 돈이 우리나라로 돈으로 치면 만원이 안 됩니다. 그런데도 물가는 우리보다 훨씬 비쌉니다. 자연스럽게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일본의 무사들이 이백년 이상 사회를 힘으로 지배하면서 조금이라도 반항을 할 낌새가 보이면 바로 죽여 버렸다고 하네요. 그러니 일본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정치하는 사람들이 못된 짓을 해도 감히 대들 생각을 못하는 것이지요. 겉으로 보이는 검소함과 차분함에 이런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니.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을 했다면 일본이라는 나라와 국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겠지요.
히로시마에 있는 평화공원에도 가 보았습니다. 잘 알다시피 일본은 원자폭탄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 겪은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나라입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에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는데 그 피해는 어마어마했습니다. 현장에서 12만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그때 입은 방사선의 후유증으로 인해서 목숨을 잃은 사람까지 더하면 14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일본에 강제로 끌려가서 공장을 다니거나 군인으로 있던 우리 조선 사람들도 2만명이나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커다란 폭발과 열로 도시 전체가 망가진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평화공원 자료관에서 본 원자폭탄으로 인해 입은 피해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땅에서 히로시마 주민들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핵무기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면서 평화공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원자폭탄이 폭발하고 내뿜는 열기로 일부가 허물이지고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도 부셔 버리지 않고 기념물로 남겨 두었습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는 전국 곳곳에서 일본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오고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핵폭탄이 가지고 있는 위험을 직접 보고 느끼기 위해 찾아오고 있습니다. 평화공원을 둘러본 우리 아이들도 핵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자료관에 전시된 자료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게 되었다고 하네요.
우리를 초청하신 사와무라 선생님은 결코 부자가 아닙니다. 나이 여든이 넘으신 평범한 할머니입니다. 그런데도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을 일본으로 초청하신 까닭은 한국과 일본의 정부는 자기들 잇속을 챙기느라 서로 으르렁대고 싸우더라도 우리 시민들은 서로를 미워하지 말고 평화롭게 살자는 것입니다. 정부가 아닌 시민의 힘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우정을 쌓고 믿음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그리고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핵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고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는 바람 때문입니다.
원자폭탄으로 인한 피해를 직접 입은 국민으로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를 겪으면서 누구보다 핵으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기에 핵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십니다. 스무 명이나 되는 우리 식구들을 재우고 먹이고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신 사와무라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선생님이 바라는 대로 평범한 우리 시민들이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열심히 애쓰겠습니다.

김희정 변산공동체학교 교장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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