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어르신들 부모처럼 모시고 살겠다.

“우리 이장이요?. 똘똘해요”
“천사여 천사. 동네 할머이들을 어머니처럼 모신다니까~”
“우리 이장님 이쁘게 봐 줘요. 성질이 좀 급해서 그렇지 을매나 부지런한지 몰라 ~”
등룡1구 마을 이장 서정택씨에 대해 물었더니 동네 할머니들이 앞다투어 칭찬을 하신다. 서정택씨는 천사처럼 생기지는 않았다. 이쁘게 생기지도 않았다. 얼굴이 아니라 마음 씀씀이가 그렇다는 말일게다. 올해로 2년 3개월 째 이장일을 보고 있는 서정택씨가 마을 일을 보며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어렵고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이다.
마을로 배정되는 사업이 있을 때 우선순위는 어려운 사람이다. 등룡 1,2구와 삼산마을 등 3개 마을이 모여 ‘에너지 자립마을 사업(추진위원장 김병인)’을 추진할 때도 그랬다. 태양광 발전시설과 태양열 시설 30개를 마을에서 분배했는데 어려운 분들 순서로 배정을 했다. 소형농기계 지원사업도 마을에서 힘 있는 사람이 아닌, 어려운 사람에게 우선권을 준다. 동네에 어려운 사람이 없는지, 어르신들이 잘 지내시는지 살피는 일은 중요한 일과이다. 그러니 본인 말에 따르면 ‘성질 더럽게’ 생겼어도, 마을 어머니들이 서정택 씨를 ‘우리동네 천사’라고 부르는 것이 크게 무리는 아니다.
서정택씨는 6년 전 51세의 나이로 귀향을 했다. 귀농이니 귀촌이니 요즘 흔한 말도 있지만 서정택 씨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홀 단신으로 ‘그냥 고향에 돌아왔다.’ 
그가 고향인 등룡 삼거리를 떠난 것은 15세 때였다. 중학교 입학해서 6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다. 마침 삼간리에서 경지정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며칠 동안 노가다를 뛰어 여비를 마련했다. 을지로 방산시장에서 2년간 비닐가공 일을 했다. 그러다 지인의 소개로 도서출판 ‘탐구당’에 들어가 5년 동안 근무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동대문새벽시장 아트프라자에 임대관리부장으로 25년을 근무했다. 500여개 매장에서 임대료를 수납하는 일과 150여대 주차시설의 주차료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자세도 좋았고 돈도 꽤 벌었다. 집도 장만했다. 서른 일곱 다소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그런데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 잦은 다툼과 갈등이 이어졌다. 결국 2년 만에 결혼생활은 실패에 이르렀다. 크나큰 고통이었다. 돈도 집도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방황이 시작되었다. 많은 것을 잃었다. 오랜 방황의 끝에 모든 것이 부질없어 질 무렵 고향이 떠올랐다.
이때 서정택씨는 고향동네 친구 ‘김동섭’을 만난다. “귀농해서 농사짓고 살려고 하네” 김동섭씨는 등룡신협 이사장이었던 김겸준씨의 장남으로 오랜 직장 생활을 접고 귀농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함께 가세” 그렇게 돌아왔다.
“동섭이 친구 엄청 고마운 사람입니다. 신용불량도 해결해주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전답도 빌려주고요. 뭐 대단한 결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냥 혼자 고향에 돌아가 ‘동네 어르신들 부모님처럼 모시고 성당 열심히 다니고 살자’는 생각이었지요” 고향에 돌아와서는 열심히 농사를 짓고 마을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오래간만에 잡아보는 삽이라 허리도 아프고 힘들었지만 1년, 2년 해가 거듭되면서 농부의 근력이 생겨났다.
마을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어르신들을 잘 모시고 어려운 분들을 위해 일을 하려면 이장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년간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난 2014년 마을 이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트랙터도 장만했다. 트럭도 있다. 친구 동섭이 아버님이 편찮으실 때 몇 차례 서울로 모시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 일로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었다. 삼현마을에 사는 이규창씨도 고마운 친구다. 이런 저런 일상의 일들을 상의하는 벗이다. 이규창씨는 카톨릭농민회 전주교구 부회장을 맡고 있는데 함께 카톨릭농민회 활동을 한다. 현재 서정택씨는 카톨릭 농민회 등룡교구 부회장이다. 산불감시원도 하고 있다. 하서지역 우리밀재배 단지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바쁘고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리지요. 저는 항상 약속시간 30분 전에 갑니다. 한번 했던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애씁니다. 어떤 유혹도 소용없지요.”  정택씨는 남다른 정의감을 가지고 있다. 다들 어려워서 말하지 못하는 난처한 일들을 서슴없이 지적하기도 한다. 나이가 많은 어른도 예외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면 곧바로 지적하고 따진다. 하지만 뒤끝은 없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네가 맑고 건전한 지역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손해 본다고 생각하며 사는 게 맞다고 봅니다. 이번에 안됐다고 실망하지 말고 다음에 잘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렇게 서로 존중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서정택씨는 고향인 등룡마을 뿐만 아니라 하서지역에서도 훌륭한 일꾼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고향은 서정택씨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훌륭한 무대가 되어 주었다. 사람은 오고 가도 고향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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