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공유를 위하여

테러방지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야당의 무제한토론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가 3월 2일로 막을 내렸다. 8일간에 걸쳐 38명의 야당 국회의원이 총 192시간 27분 동안 토론에 나섰다. 비록 마지막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크게 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리버스터라는 이 낯선 단어가 우리에게 현실이 된 것은 이번이 43년만이다. 43년 전의 필리버스터는 국회 안의 외로운 싸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016년의 필리버스터는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생각지 못한 시너지효과를 일으켰다. 국회방송 카메라를 통해 생중계되는 국회의원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은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특히 실시간 채팅이 가능한 유튜브에서는 다 읽지 못할 정도로 수많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많이 나온 의견 중 하나는 ‘그간 국회의원들이 놀기만 하고 특권만 챙기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훌륭한 의원들이 많은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 말 그대로 생방송으로 본 국회의원들은 무능하거나 탐욕스럽다 생각했던 우리의 선입견과는 아주 달랐다. 정연한 논리전개와 자기분야에 대한 높은 전문성, 그리고 호소력 있는 언변을 들으며 자연스레 이런 의문이 생겨났다. 왜 전에는 그것을 몰랐을까?
시간 무제한의 생방송, 편집의 벽을 넘다

일반 시민이 국회의원을 만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만난다 해도 그의 말을 듣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그들이 직접 보내준 선전물이 아니고서는 모두 언론을 통해서다. 언론, 특히 TV보도에서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한 화면을 보여주는 비율은 날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인터뷰이가 등장하면 두 세 문장을 완전하게 말할 시간동안 방송됐다. 지금은 한 문장을 채 다 보여주지도 않고 넘어가기 일쑤다. 빠른 화면을 선호하는 시청자들에 맞추기 위해서다. 잘려진 의견은 기자나 앵커의 멘트로 대체된다. 있는 그대로의 화면을 직접 볼 수 있는 비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언론사나 편집이 개입하는 비중은 점점 높아진다는 뜻이다. 짜깁기가 용이한 신문은 더 말할 필요가 있으랴. 이렇게 되면 언론사가 원하는 색을 넣기가 더 쉬워진다. 사실상 우리는 모두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그게 어떤 색인지만 서로 다를 뿐. 어쩌면 이 이야기를 부안독립신문의 독자들에게 하는 건 실례라는 생각이 든다. 부안군민들이야 말로 언론왜곡을 가장 뼈저리게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필리버스터 방송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시간 무제한의 생방송이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번 필리버스터를 일부라도 시청한 사람이라면 자기 평생에 들을 국회의원 연설보다 더 긴 시간동안 그들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편집되지 않고 시간제한을 받지 않은 국회의원의 날 것에 가까운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그 새로운 발견에 열광했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이 경험은 오직 새로운 미디어에 익숙한 일부에게만 공유됐다. 기성 미디어, 특히 방송은 그 어느 때보다 한 가지 색의 진한 안경으로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공중파, 종편 대부분에서 관첨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은지 오래다. 이 색안경을 통해 이번 필리버스터를 바라본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이유로 꼭 필요한 법을 방해하는 구태의연한 운동권세력들을 보게 됐을 것이다. 혹은 아예 이 사건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폭력의원 오명을 썼던 강기정 의원이 강목사라는 별명을 얻게 된 계기도, 홍종학 의원의 경제 스케치북도, 시 읽는 남자로 등극한 이학영 의원의 문학적 감수성도, 서기호 의원의 법학 강의도, 모두 공유할 수 없는 딴 세상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미디어 소비의 차이, 여론의 양극화로

지난 2월 29일 더불어민주당 비대위가 필리버스터 중단을 선언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분명 온라인의 반응은 뜨거운데 여론조사에서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으니 초조해진 게다. 새누리당이 여유로운 것도 같은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의 판단이 옳았는지 여부는 따지지 않겠다. 그러나 그 우려에는 분명 나름의 근거가 있다. 서로 다른 미디어를 소비하는 두 계층 사이에서 나타나는 정보의 양극화, 그리고 여론의 양극화는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미국의 트럼프와 샌더스, 양 극단에서 불고 있는 바람이 그 증거다.
15년 전 안티조선운동 한창일 때는 어떤 신문을 보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종류의 미디어를 소비하느냐의 문제가 됐다. 전에는 같은 값을 주고 다른 신문을 보게 하면 그만이었지만 새로운 미디어를 접하려면 훨씬 더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 벽을 뛰어넘어 서로 이해하기는 전보다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됐다. 그래서 어느 사건에 대해 한쪽 성향의 사람들끼리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그 반대편은 너무나 태평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세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뉴미디어의 특성을 생각하면 정보의 양극화와 여론의 양극화는 이념의 양극화이자 문화의 양극화이며 세대간 양극화이기도 하다. 경제적 양극화 못지않은 깊은 골이 사람들 사이에 생겨나고 있다. 이를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답은 필자의 능력 밖이다. 다만 작은 징검다리를 놓는 심정으로 이번 필리버스터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가 모여 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1. http://www.filibuster.today/
필리버스터 참여의원들의 발언시간과 발언내용이 잘 요약돼있고 관련자료 링크도 풍부하다.

2. http://filibuster.me/
필리버스터 참여의원들에게 전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여 있다. 이 의견들은 실제 필리버스터에서 의원들에 의해 낭독됐다.

3. 나무위키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 항목 : 포털사이트에서 ‘나무위키’를 검색 → 나무위키에서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를 검색
필리버스터에 대한 찬반의견 및 관련한 온갖 자료들이 담겨있다. 다수의 참여자에 의해 편집되는 문서인 만큼 시시때때로 내용이 변한다는 점에 유의 할 것. 유튜브 채팅창과 SNS를 통해 만들어진 의원들의 별명을 비롯한 당시의 반응들이 잘 기록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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