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세버스를 타고 지역 행사에 동행했다.
깊은 골짜기까지 들어갔는데 나 먼저 돌아올 사정이 생겼다. 그 곳은 축제기간이라 차들이 붐벼 택시도 여객버스도 만나기 드물었다. 지나가는 차량을 얻어 타고 나와야 할 형편이었다. 대부분 커플끼리 드라이브하는 차량이라 손을 들어도 본체만체했다.
발을 동동 구르다 드디어 창문을 열고 가는 차량이 멈추었다. 젊은이와 노인이었다. 모자지간으로 보였다. 다급한 사정을 여쭈니 태워주었다. 두 모자는 약 삼십 분 소요되는 거리를 달려오는 동안 자분자분 정담을 주고받았다.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은 유령처럼 숨만 쉬며 대화를 경청했다.  내 목적지는 KTX 정차 역이었다. 내릴 때가 되어 고맙다는 사례를 할 차례다. 돈으로 답례할 수도, 다시 만나리란 보장도 없어 빚을 지고 헤어지는 처지라 미안하고 감사했다. 달리 빚을 갚을 방법은 없다. 젊은 운전사의 노모에게 오래오래 건강하시라는 덕담으로 때웠다.
두 모자를 보내고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 근처의 역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발차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덕에 예약한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다. 예약된 자리에 지친 몸을 기대 졸다보니 최종 목적지에서 두 역을 남겨두고 있었다.
경유 역에서 정차했을 때 탑승한 젊은 여자 두 명과 노인 한 명이 내 자리로 다가왔다. 모녀지간으로 보였다. 내 옆자리가 그들 중 한 명의 자리였나 보다. 엄마로 보이는 노인이 내 옆자리 창측에 앉았다. 두 딸은 내 옆에 서 있었다.
마침내 빚 갚을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일어나 두 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미안한 표정을 짓기에 두 역을 지나면 내리니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세 모녀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기차에서 내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오기 전 두 모자에게서 얻은 자리를 열차에서 만난 세 모녀에게 양보하였으니, 두 모자에게 진 빚을 조금은 갚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 나름의 릴레이 정산 방법이라고 할까. 내가 상정하는 시나리오가 맞다면 세 모녀는 내일이든 모레든 나에게 진 이 자리 빚을 다른 누군가에게 되돌려 갚아줄 것이다. 그녀들 또한 나처럼 회심의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빚을 갚을수록 빛으로 채워질 것이니.

돌이켜보면 반복된 일상 속에서 고의든 과실이든 남들에게 진 빚이 많다. 더러는 갚기도 했지만 아직도 변제치 못한 빚들이 훨씬 많다. 부채의식도 없이 살아온 시간이었다. 앞으로 갚는 데만 남은 시간을 할애해도 다 갚기 어려울 만큼 많은 빚을 안고 살아왔다. 그 날의 두 모자에게 진 빚이 하나 더 있다. 오래 닫혀있던 부채의식을 다시 열람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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