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을 위한 예산 이야기

마을에서 주민을 상대로 회비를 걷습니다. 마을의 발전을 위해 쓰겠다니 다들 이의가 없습니다. 걷힌 돈이 꽤 됩니다. 마을 대표는 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주민의 의견도 두루 듣고, 돈을 쓴 후에는 제대로 썼는지 내역도 공개 해야겠지요?
주민들은 우선 허물어진 마을 진입로를 보수하고, 어려운 가정도 돕고, 친목을 위해 온천 여행도 다녀오고, 전부터 별러오던 소식지도 만들고, 그래도 남으면 작은 쉼터도 만들자고, 제각기 의견을 냅니다. 내가 낸 돈이 헛되이 쓰이면 안 되니까요.
만약 마을 대표가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제 집 앞길이나 넓히고 여행경비를 부풀려서 슬쩍 제 주머니로 챙긴다면 어떡하시겠어요? 예. 가만 안 두죠. 가만 둬서도 안 되고요.
마을을 벗어나 국가나 지자체로 눈을 돌려 볼까요? 알고 보면 국가나 지자체도 국민들로 부터 회비를 걷어 운영됩니다. 다만 회비를 걷는 방식이 여러가지라 좀 헷갈리긴 합니다. 소득세나 재산세처럼 직접 내는 것도 있고, 부가가치세나 특별소비세처럼 이미 상품가격에 포함돼 있는 회비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퍼에서 과자 한 봉지, 음료수 한 병, 담배 한 갑을 사도 다 회비가 붙어 있습니다. 요컨대 부안군민이라면 한 분도 빠짐없이 회비를 또박또박 납부한 부안군의 정회원이라는 말입니다. 다만 정부나 지자체가 걷는 회비는 세금이라고 부른다는 점이 다르긴 합니다.
그렇게 걷은 세금을 어디에 얼마를 어떻게 쓰겠다고 정리한 것을 예산안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마을 이장의 ‘회비 사용계획서’와 같습니다. 또 그 계획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검사하는 과정이 바로 의회의 예산안 심사입니다. 지금 부안군청에서는 이 계획서를 한창 만들고 있고, 한 달 남짓 후에는 군의회로 넘어가 의원들의 꼼꼼한 심사를 받게 됩니다. 예, 알고 보면 돈을 쓰는 과정은 동창회나 산악회나 계모임이나 군청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참 이상한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사람들은 동창회나 산악회의 회비가 허투루 쓰이는지에는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그 회비의 수만, 수십만 배나 되는 군민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 군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피 같은 돈인데도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두어 달 전 군청에서는 부안상설시장 뒤편의 땅을 사서 주차장을 만들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군민들 세금 중 39억을 쓰겠다고 했습니다. 부안군민이 5만7000명이니 1인당 6만8000원의 회비를 쓰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터무니없는 계획에 대해 군청에 항의를 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군민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6만8000원이 적은가요? 4인 가족이면 27만 2000원이나 되는데요?
우리 부안군 1년 예산은 5천억원에 육박합니다. 이 돈을 군민 수대로 나누면 1인당 877만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군민은 모두 1년에 877만원씩의 회비를 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큰돈을 내고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요?
자, 그럼 군청이 군민의 회비를 제대로 쓰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화번호부처럼 두툼한 예산서는 웬만큼 가방 끈 길다는 사람도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픕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마을회비나 군청 예산이나 기본은 같습니다. 먼저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는 게 좋을까,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 예산집행은 단순히 돈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정책을 집행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산을 감시하는 일은 정책을 제대로 펼치고 있는가를 검증하는 아주 중요한 시민의 권리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어디에 어떻게 쓰라고 시시콜콜 간섭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 돈이 헛되이 쓰여서는 안 되니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어떻게 감시하고 간섭해야 할까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우리 지역을 잘 아는 건강한 시민사회단체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예산서를 통째로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아다시피 우리 부안에는 정말이지 믿고 의지할 만한 자생적인 시민사회단체가 없습니다. 봉사단체는 많지만 예산 감시 활동은 매우 껄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결국 시민들 스스로 팔을 걷어 부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자신의 직업과 연관된 부분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예산은 부안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니까요. 선생님들은 교육관련 예산을, 택시와 버스기사님들은 교통과 관련된 예산을, 농민들은 각종 보조금을 포함한 농업관련 예산을, 어민들은 어업 관련예산을, 장사를 하시는 분들은 경제활성화나 재래시장 관련 예산을, 주부들은 여성과 아동관련 예산을, 귀농귀촌자들은 각종 지원예산을 들여다보는 겁니다. 혼자 할 수도 있고 같은 직종의 동료들과 어울려 토론을 해도 좋겠지요. 예산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군청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습니다. 컴퓨터 사용이 불편하면 군청에 가서 종이에 출력해 달라고 하면 됩니다. 예산 관련 정보는 모두 공개하도록 돼 있을뿐더러, 돈 주인이 돈 씀씀이를 살펴보는 건 상식 중에 상식입니다.
또 지역별로 활동을 하셔도 됩니다. 각 읍면, 더 좁게는 마을 단위로 뭔가 땅을 파헤지고 산을 깍아 내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면 십중팔구 예산을 쓰는 일입니다. 그럴 때면 그게 무슨 공사고 돈이 얼마나 들고 계약은 제대로 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매년 초 각 읍면에 직접 가서 올해 우리 마을에 할당된 예산이 얼마이고 어떤 사업이 예정돼 있는지 미리 파악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 내용을 가지고 마을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토론을 하는 거죠. 그래서 주민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수정하고 돈도 아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의회 예산심의에 직접 참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12월에 군의회에서 예산심의가 시작되면 직접 오셔서 방청을 하셔도 되고요, 궁금한 점을 지역구 의원에게 물어보거나 수정을 요구해도 됩니다. 지엄한 유권자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 해야 소중한 내 돈을 지킬 수 있다는 점, 잊으시면 안 됩니다.
요즘 부안군청에서는 유난히 소·공·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민들과 소통, 공감, 동행하는 행정을 펼치겠다는 건데, 사실 예산을 떼어놓고는 다 공염불입니다. 시민에게 예산에 대해 보다 쉽게 설명하고, 참여케 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그래서 반영하고 수정하고, 이런 일련의 활동이야말로 바로 군청이 할 일입니다. 다른 지자체처럼 예산학교를 세워 교육을 해도 되고, 예산의 0.1~0.5% 정도를 떼어 주민 스스로 사용하도록 실질적인 주민참여예산제를 시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엔 부안군청에서 제대로 해 보겠다 하니 지켜볼 일입니다.
사실 군청은 행정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돈을 대신 쓰는 기관입니다. 시민 돈도 제대로 관리 못하면서 지지를 호소한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부안군청의 전향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면 무엇보다 먼저 시민들이 움직여야 합니다. 정말이지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시민의 사소한 관심, 작은 몸짓이 큰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 늘 기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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