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6학년 시절, ‘박정희 대통령께서 부하의 흉탄에 맞아 서거하셨을 때’, 나와 친구들은 아주 깊은 슬픔에 젖었다. 그 일 때문에 ‘국민’학교 수학여행까지 취소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싫다거나 서운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훌륭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 인도의 간디나 영국의 처칠 같은 분이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가 ‘쿠데타’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그게 사람을 죽이고 총으로 권력을 빼앗는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유신 체제라는 것 덕분에 우리는 체육관에서 단독 입후보한 대통령 후보를 99%의 찬성율로 뽑는 ‘한국형 민주주의’가 해외에서 북한과 비슷한 독재로 여겨진다는 것, 그토록 자애롭고 성인(聖人)처럼 느껴졌던 박정희가 딸 같은 아가씨들 옆에 끼고 ‘시바스 리갈’이라는 술 처먹으며 ‘진탕’ 놀다가 총 맞아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기분이 너무너무 불쾌했다. 박정희에 대한 내용 하나하나도 너무 불쾌했지만, 더 불쾌했던 것은 그런 사실에 대해서 어떤 의심도 가져보지 못한 나 자신의 어리석음이었다. 나는 나름 공부하면서 ‘한국형 민주주의’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교과서 논리 하나하나가 다 맞는다고 생각했다. 한국형 민주주의가 ‘박정희 1인 독재’를 미화하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유신시대도 아닌데, 또 다시 정부가 ‘국정 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다. 이 교과서에는 어떤 내용이 실릴까? 나의 경험으로 봐서는 현재 정부에게 불리한 내용은 실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배웠던 국정 교과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순진하고 지적 호기심 가득한 애들을 오염된 생각으로 물들일 것이다. 독재를 ‘한국형 민주주의’라고 하거나, 민족에 대한 배신 행위인 친일을 ‘조국 근대화를 위한 헌신’으로 바꿔 놓을 것이다. 싼 임금을 위한 저가 농산물 정책 때문에 피폐해진 농촌을 또 뭐라고 둘러댈 것인가? 무슨 이유를 대든 농촌이 피폐화된 것은 농업이나 농민 탓이 될 것이다. 절대 정부 정책 때문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난 214 주민 투표 같은 것을 어떻게 서술할지 궁금하다. 절대 부안군민의 위대한 민주적 행동으로 기록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500원을 걸 수 있다. 아마 지역이기주의적인 폭력 활동으로 기록될 것이다. 거기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모욕을 줄 것이다. 아마 그 잔인한 정신적 고문은 반민주적 정부가 있는 한 계속 될 것이다. 나는 자긍심으로 214를 기억하는 많은 군민을 알고 있다. 스스로가 참여하여 변화시켰고, 스스로 변화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부안군민의 몸과 정신에 크게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문지르고 다른 것을 새기려는 고문이 진행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게 국정교과서의 본질이다.

우리 세대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그 이유를 아는가? 바로 국정 교과서 논란과 같은 맥락에서 그렇게 바뀌었다. ‘국민’학교는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만드는 학교였다. 그 국가는 독재자가 지배하는 국가였고, 결국 독재자에 충성하는 일꾼들을 만들어내는 게 ‘국민’학교였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뇌 당했다. 나는 국가를 위한 도구였다.
민주국가에서 국민은 국가를 위한 존재가 아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한 존재인 것이다. 왜 국가 공무원에게 임금을 주는가? 국민을 위해서 일하라고 그런 것이다. 그래서 민주 사회가 되면서 ‘국민교육헌장’도 없어지고, ‘국민’학교도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이게 자연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역사의 퇴행이 시작되고 있다. 천박한 이익을 좇아 이명박을 청와대에 들여보낸 순간부터 시작된 이 역사적 퇴행은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 초등학교가 다시 ‘국민’학교가 될지도 모르겠다.

부안은 저항의 고장이다. 여기서 저항이란 청년의 치기어린 반항이 아니다. 불의에 맞서서 과감히 일어나는 숭고하고 결의에 찬 행동이다. 동학운동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동학운동은 단순히 핍박에 시달려서 반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고 한다. 가장 깨어있었던 곳의 민중들이 지도자의 선도아래 일사분란하게 저항한 것이다. 신석정의 시가 목가적이라고 여겨졌지만, 최근 발견된 시는 그 속에 뜨거운 저항정신이 남겨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지역운동사에서 전무후무한 거대한 저항운동이었던 ‘2003년 방폐장 반대투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아 부안의 이름을 전할 거대한 민중 저항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낸 대한민국 최초의 주민투표는 정말 자랑스러운 부안의 사회적 유산인 것이다.
이런 유산은 처박아 두면 곰팡내만 나게 된다. 오래전 연인에 대한 기억처럼 옅어지거나, 점차 빛바랜 감정에 의해 왜곡되어간다. 그것을 가장 잘 계승 활용하는 것은 다시금 꺼내서 새로운 일에 한 번씩 써먹는 것이다. 그래야 그 정신이 벼려지고 날카로와 지는 것이다. 역사를 왜곡하려는 못된 퇴행에 맞서 부안군민이 떨쳐 일어나자. 214 정신을 이렇게 되새겨 보자. 불의에 맞서는 정신을 다시 벼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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