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곳 부안 땅에 2008년에 이층 황토흙집을 지었다. 2년이란 시간을 투자한 결실이었다.어머님 살아생전 남은 여생을 편안한 집에서 사시길 바래서 지었다. 어머님은 이 황토집에서 4년 남짓 사시다가 3년 전 세상과 이별을 고하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나는 서울 공방을 처분하고 이곳 부안으로 내려 왔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악기 제작을 하며 벌러덩과 함께 살고 있다.
빈 집엔 항시 온기가 없다. 서울에 일이 있어 일주일가량 집을 비웠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벌러덩이 숨 가쁘게 달려 나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미안함에 두어 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흔들어대던 꼬리에 속도가 빨랐다. 벌러덩은 작은 체구의  발바리 개다. 이곳에서 보낸 세월이 7년이나 되었으니 나보다 더 이집에서 오래 산 명실공이 터줏대감이다. 벌러덩은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상속받은 개다. 어머니는 당시 만원을 주고 작은 체구의 강아지 한 마리를 구입해 오셨다. 처음 구입해 왔을 때 나는 어머니께 화를 내었다. 무슨 발바리 새끼를 사왔냐며 타박을 해댔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내가 한 행동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
시골집에서 혼자 지내다보니 유일한 말벗이 개일 때가 많다. 나의 어머니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혼자 사시던 노모의 유일한 말벗이 벌러덩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는 어머님이 키우던 서너 마리의 개들을 모두 처분하였다. 어머님의 잔상이 자꾸 보여 괴로웠기 때문이다. 마침 개를 산다는 개장수의 트럭이 저 멀리서 다가왔다. 나는 개장수 트럭을 세웠다. 서너 마리의 개들을 개장수에게 인계하고 뒤돌아섰다. 그런데 순간 벌러덩이 개장수의 트럭 철문을 뚫고 도망쳐 숨어 버렸다. 개장수는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발바리 개는 가져가지 않으려 했는데 잘 되었네," 하며 껄껄 웃음을 던지더니 차를 앞으로 끌며 떠나 버렸다. 나는 할 수 없이 벌러덩만 남겨두게 되었다.
그 뒤로 벌러덩은 내 뒤를 졸졸 쫒아 다니며 꼬리를 흔들었다. 사료를 주면 사료만 먹고 짬밥을 주면 짬밥만 먹었다. 그리고 나의 눈치를 보는 듯 했다. 몇 번 쓰다듬어주면 벌러덩 자빠지며 애교를 부렸다. 이 녀석과 함께 있다 보니 나 또한 웃는 날이 많아졌다. 이름 또한 의태어인 벌러덩이라 지었다. 몇번 쓰다듬어주면 벌러덩 드러눕는 까닭에서 였다. 나와 단둘이 산세월도 이제 삼년이 되어간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옆집 껄떡이(발바리숫캐)와 정분이나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다. 그런데 두 마리가 죽었다. 올망졸망한 새끼 세 마리가 앞마당을 차지하며 공간이 분주해졌다. 새끼 전부를 내가 다 키울 수 없기에 수소문 끝에 지인분들께 분양을 시켰다. 새끼 하나가 떠나고 또 하나가 떠나갈 때 벌러덩은 항상 이층 계단 앞에 쭈그려 앉아 새끼와의 헤어짐을 외면하려는 듯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마지막 새끼가 떠나던 밤 벌러덩은 한참을 끙끙거리며 몸살을 앓았다. 우울증인 듯 보였다. 밥도 먹지 않은 채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힘도 하나도 없이 눈망울 속으로 새끼 떠나보낸 그리움을 새기는 듯 보였다. 벌러덩은 한동안 기운 없이 보냈다. 저러다 죽지 싶었다. 동물도 이럴 진데 사람은 오직할까 내 가슴도 아팠다. 그날밤 둘이 마루에 앉아 그리운 밤을 별을 보며 쪼갰다.

그리운 꽃
여물 끓는 솥단지 하얀 안개꽃
풀풀대던 소 엉덩이 밑 피어올랐던 그 꽃
어머니 끓이시고 아버지 한 주걱 푸셨던 여물속 안개꽃
서로가 주고 받던 꽃말이여라
아롱지게 그리운 그 꽃

얼마나 지났을까. 벌러덩이 몸을 추스르기라도 하려는 듯 간간히 내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처진 몸을 세웠다. 나는 안타까움에 참치캔 하나를 따서 밥에 넣어주니 벌러덩은 헐레벌떡 한 그릇을 해치웠다.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새끼가 떠난 후 벌러덩에게 이상한 버릇 하나 생겨났다. 자동차가 집 앞을 지날 때면 짖어대며 자동차를 쫒았다. 처음엔 집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보았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새끼가 분양되던 날이면 자동차에 실려 새끼들이 하나둘 떠나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러덩의 행동을 그냥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사람도 새끼와의 이별을 그리워하며 세월이 지나야 망각하듯 벌러덩도 그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전히 벌러덩은 자동차를 쫒는다. 밤이 되면 이층 작업방 계단 밑에 쭈그려 앉아 항상 나를 기다린다. 작업을 마치고 내려가면 몸을 단정히 하고 항상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긴다. 나는 벌러덩의 머리를 두어 번 꼭 쓰다듬어 주는 버릇이 생겼다. 일주일 가량 비워둔 부안 집을 벌러덩이 밥도 먹지 않은 채 빈집을 지키며 나를 기다렸다. 집에 도착하니 마루에 소포 하나가 와있다.

* 오늘 전화 한통을 받았다. 부안독립신문 우병길 국장님이시다. 삶 그리고 쉼표에 글 한 줄을 부탁하신다. 처음엔 망설였다. 글 쓰는 재주도 없는데다 아는 것이라고는 악기 만드는 일 밖에 모르는 목수가 무슨 글을 남에게 보인단 말인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거절도 하지 못하고 곰곰히 생각하다 나의 반려견 벌렁덩을 한 번 써보기로 마음먹고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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