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원/부안읍


마당에서 장난을 치던 강아지들이 한 구석에서 뭔가를 물어와 흔들어 댄다. 낡디낡은 한 짝의 여자용 흰 고무신. 문득 고무신의 임자가 20여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코가 갈라진 그 고무신이 보물처럼 느껴졌다.

보고픈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음식을 유난히도 잘 하시고 유달리 정이 많았던 우리 어머니. 살아 계신다면 지금도 그 따스한 품속에 기어들고 싶은 우리 어머니…. 느닷없는 고무신 한 짝은 나를 어머니 생각으로 빠져들게 했다.

어머니는 이제 사진첩에서나 만날 수 있다. 나는 오래된 책장 속 앨범을 꺼내 뒤적였다. 그러다가 기가 막힌 사진을 찾아냈다. 아마 어머니 나이 쉰 즈음 내변산에 나들이 가서 즐겁게 노시는 모습을 찍은 사진인 모양인데, 정말 가관이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계곡 개울에 수박 한 통이 떠 있고, 어머니와 여러 명의 이모님들(그때에는 어머니 친구들을 이모라고 불렀다)이 가지각색의 모자로 멋을 부렸다. 놀이에서 져서 벌을 받는지 억지로 술을 먹이는 장면,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는 듯한 모습, 한쪽에서는 스스로 자작도 하고 수박도 먹는 모습 등 다양하다.

더 가관인 것은 짧은 수영 팬티에 물에 젖은 상의의 러닝셔츠가 몸에 찰싹 달라붙어 우리를 키운 가슴꼭지가 다 보이는데도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다. 평소 집에서는 엄두도 못 냈을 장면들이다. 아마도 허락받고 놀러 왔다는 안도와 술기운,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방감 때문이었으리라.

엄했던 가장들의 수발과 그 와중에도 자식들을 챙기고 보살펴야 했던 그 시절의 우리 어머니들.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우리 어머니들의 놀이마당을 사진으로 보며, 그리움과 보고픔에 코끝이 시큰거린다.

어머니의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고무신을 만지작거린다. 나대던 강아지들 소리도 잦아들고 어머니 자장가 같은 빗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이제서야 말해봅니다. 어머니 사랑해요!”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