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심/부안읍


요즘도 가끔씩 나는 이른 새벽(3시30분) 사과와 마실 것을 챙겨 넣은 작은 가방을 둘러매고, 길을 달리기 위해 집을 나선다. 격포까지 34km, 약 4시간30분을 달려 바닷가 언덕 벤치에서 맞는 아침과 혼자 깎아 먹는 사과 맛은 정말 특별하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는, 뛰면서 지나쳐온 풍경들과 함께 나의 삶도 뒤돌아보게 된다.

부모님의 축복도 없이 일찍 시작한 결혼 생활이다 보니 많이 힘들었고, 또 그 힘들던 일들을 얘기하며 위로받을 수 없어 참고 살아온 세월이 내게 큰 병을 만들었다. 7년 전 갑자기 갑상선 암을 선고받고 산더미처럼 밀린 일을 등에 지고 수술실로 들어가며 내가 느꼈던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난 참 열심히 살았는데 ... 왜 하필 나지?”

수술은 잘 끝났고, 방사선 치료를 받던 중 이것저것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조금씩 산에 오르고 수영을 배웠고 남편의 권유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인생을 살다보면 미움과 원망이 생길 때가 있다. 그때마다 달리면서 주변을 사랑하게 되었고, 밉기만 하던 남편에 대한 애정도 회복되어갔다.

준비도 없이 처음 참가한 마라톤대회가 ‘변산해변마라톤대회’였다. 번호표도 스피드칩도 없이 달려 2.5km반환점을 돌아서며 나는 내 평생 처음으로 엄청나고 순수한 행복을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달리는 거리를 조금씩 늘려갔고 건강도 되찾았다. 또한 이 속에서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도 배워갔다. 21km, 42km 풀코스를 완주하고 100km도 2번 완주했다.

사진은 2003년 ‘청풍호반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달리는 모습이다. 길에서 만난 꽃들과 실없는 대화도 나누고 바람을 느끼고 낯모르는 사람의 격려에 감사의 눈빛도 나누며 뛰는 사진속의 나는 행복해 보인다.

‘제1회 매창달리기’에서 1등상으로 받은 자전거는 딸애가 타고 다니고 있다. 반핵싸움이 한창일 때 열린 ‘김제 마라톤대회’에서 2등을 하고 받은 상금을 반핵대책위에 성금으로 냈을 때 받은 뭉클함은 달리기에 새로운 보람과 목표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마라톤을 통해 스스로를 극복하고 그 성취감으로 남에게 베푸는 넉넉함을 배웠다. 또 열심히 뛰는 내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산교육이 되어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제 일은 알아서 잘한다.

요즘엔 뛰면서 1km마다 100원씩 적립을 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어디에 쓸 것인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연말에 가족과 의논하여 보람 있는 곳에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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