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대/부안읍 동중리


무지무지 배고팠던 시절, 열아홉 살에 나는 지원하여 군대엘 갔다. 지금도 부안시장에서 청과물상을 하는 이웃의 나이든 형(당시 27세)을 따라 논산훈련소에 입대를 했다. 군복까지 받아 놓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 형은 사라지고 없었다. 알고 보니 10번째 도망을 간 것이었다. 제대 후 오늘날까지 만날 때마다 “군대 동지 만났다”고 놀려대며 웃고 지내는 사이다.

그때는 다 그랬겠지만 참 혹독한 초년병 시절이었다. 내무반 60명 전원이 쫄병 순으로 바닥의 변을 혀로 핥은 기억은 정말 잊을 수 없다. 밤새 누군가 문 앞에 실례를 했고 범인 색출 명목의 기합이었다. 끝 순서의 고참이야 흙바닥 핥은 추억으로 남았겠지만 정말 잊어지지 않는 기억이다.

이제는 추억이 된 또 다른 기억은 정찰 나갔던 나를 포함한 세 명의 대원이 꿀통을 발견, 담뱃불로 벌을 쫓아내고 배고픈 참에 정신없이 꿀을 퍼 먹고 기절을 한 것이다. 귀대하고 보니 우리 셋은 탈영병이 되어 며칠을 바로 누워 잘 수 없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

이래저래 시작된 나의 군 생활은 강원도 설악동 낙산사에서 제대를 맞게 된다. 사진은 말년 기념으로 정찰 나가 찍은 것이다. 옆의 병사는 지금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 남원 출신 박종덕으로 제대 후에도 서로 안부를 물으며 오늘까지 잘 지내고 있다. 옆의 사진은 1106 야공단장 운전병 시절의 사진으로 그때 솜씨로 이제껏 핸들을 손에 쥐고 사니 사람의 미래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40년을 훌쩍 넘기고 우연히 만난 사진 속의 젊은 나는, 생존의 문턱에서도 소박한 미래의 꿈을 놓치지 않은 아름다운 청년으로 보인다. 힘들었던 세월에서 비켜선 지금, 나는 여전히 꿈꾸는 청년으로 살고 싶다. /정리=박미광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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