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중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다른 사람이 너무 가볍게 말하는 것을 보면 상당히 당황스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 말인데 내가 부여하는 의미로만 쓰자고 주장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만 끙끙 앓는다.
‘민주화’라는 말이 그랬다. 독재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민주화’라는 말은,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사람들이 ‘광복’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듯이, 군대에서 고생한 사람들이 ‘예비역’이라는 말에서 느끼듯이, 뭐라 표현하기 힘든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민주화된 세상에서 그 전에 독재에 빌붙어 특혜를 누리며 만행에 동조했던 사람들이 ‘민주화’를 가볍게 입에 올렸다. 어떤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민주화된 세상에서 민주적으로, 법대로 하자’고 ‘증거를 대라’고 발뺌을 하며 막무가내로 우겨댈 때, ‘죽 쒀서 개줬다’는 기분이 들었다.
‘창의’라는 말도 너무 쉽게 여기 저기 써먹어서 지켜보면서 참 어색했다. 어떤 분이 창의성 교육을 주장했다. 아인슈타인, 혹은 스티브 잡스, 아니면 백남준 등을 예로 들면서 그들의 인생을 보고 배우면서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고 교육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라. 이런 위인들에 대하여 공부를 하면 ‘창의성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것은 배울 수 있지만, ‘창의성’ 자체를 배울 수는 없다. 이 교육자는 완전히 헛짚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배운 것을 전혀 소화시키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교육자는 창의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위인들을 통해서 배웠으면, 이제 학생들에게 그 창의성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자기가 연구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없고 학생들에게도 왜 창의성이 중요한지를 가르치다니. 창의성을 주장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혀 창의적이지 않고 관행을 반복하는 모습인 것이다. 생각 없이 말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이 기묘한 모순!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부자’라는 말이 온 세상을 휩쓸던 시대에 조용히 감춰져 있던 소중한 말이었다. 광고에서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하고, 온갖 부자되는 법에 대한 책들이 쏟아질 때, 이런 배금주의(拜金主義)적 풍토에도 불구하고 자기 성찰을 가능하게 했던 말이 ‘행복’이라는 주관적 냄새가 많이 나는 단어였다. 그래서 ‘돈보다 행복’, 혹은 ‘돈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생각도 많이 퍼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행복이라는 단어도 너무 가볍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여러분, 행복하세요?’라고 직접 물어보면서 대답을 강요한다거나, ‘돈 많이 벌으니, 이제 행복하시죠?’라고 물어 마치 돈이 행복의 척도인양 묻는 것을 보면서 ‘행복’이라는 말이 쓸모없는 걸레짝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까지 든다. 행복이라는 것은 주관적이고 자기 성찰적인 성격이 있어 그렇게 직접 대고 물으면 안 되는 것 중의 하나다.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을 강요할 수도 없다.
만약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먼저 그 사람이 무엇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진지하게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많은 도시들과 지자체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지역 고유의 ‘행복지수’를 개발하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가로 막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런 조사를 하려면 생활 전반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된다. 1년 열두달, 하루 24시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것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지, 또한 농사짓는 사람 고기 잡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등 각각의 처지를 고려하여 세세하게 조사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전문적인 영역이다. 공무원들이 마을회관에 가서 ‘뭐 필요한 거 없어요?’라고 질문해서 얻어질 답이 아니다. 이런 일에 전문 인력을 써야 하고, 돈을 써야 한다.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지역의 정확한 상황과 사람들의 생활 여건을 알아야 그것을 어떻게 고칠지,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할지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행복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행복’이라는 말만 남발한다면 그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행복하다는 생각을 강요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아니면 ‘행복’을 덤으로 붙여주는 상품 정도로 우습게 아는 사람이거나.
‘행복한 군민 자랑스런 부안’이 부안의 지표다. 여기에 ‘행복’이라는 말이 있다. 이 ‘행복’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하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