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덕담이 오고 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상대방에게 복을 빌어주는 일은 참으로 좋은 세시풍속이다. 또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일 말고, 자기 자신에게도 의미 있는 의식을 꾀한다. 새해 들어 새로운 결심을 하거나 자신의 소망을 구체화하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각자가 믿고 있는 신 혹은 조상에게 소원을 고하며 이루어지기를 빌거나 그게 아니면 스스로 굳은 결심을 하기도 한다.
올해의 결심은 뭐니뭐니해도 금연이 대세다. 담뱃값이 두 배 가까이 올랐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취직이나 결혼을 소망하는 이들도 금연을 결심하는 이보다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했을 것이다. 새해맞이 결심은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각자 사업계획을 확정해놓고 목표를 달성하고자 결의를 다진다. 매출목표를 000억원 혹은 무사고 000일 달성 등을 외친다. 국가라고 예외가 아니다. 일치감치 예산을 확정해놓고 각종 경제지표마다 목표치를 정했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성장률과 1인당 GDP 등이다.
그런데 문득 “복 많이 받으세요”라거나 “경제성장률 0% 달성” ‘금연’ 등이 너무 진부하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참신한 새해 인사말이나 좀 더 그럴듯한 새해 목표는 없을까?
“복 많이 ‘받으세요’” 대신 “복 많이 ‘지으세요’” 라고 덕담을 나누는 사람이 늘고 있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로또 당첨식 행운으로 복이 올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가. 스스로 노력을 통해 복 받을 일을 많이 하면 복은 저절로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복 받을 일을 하지 않고 복을 바란다면 제비 다리를 분지른 놀부보다 못한 사람 아니겠는가? 그러나 ‘복을 지으세요’라는 인사는 축복의 뜻에 더하여 명령이나 훈계에 가까워서 손윗사람에게 쓰기에는 꽤나 거북살스럽다.
그렇다면 “새해 복을 많이 찾으세요!”는 어떨까? 복은 내 것을 나눠주거나 남에게서 빼앗아 올 수도 없는 것이니 모쪼록 스스로 짓거나 찾아야 하는 것이다. 돈이나 재물은 나눠줄 수 있겠으나, 그 재물이 받은 사람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돈과 재물이 행복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도 아니다. 부자라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욕망의 성취가 곧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 많든 적든 그 가운데서 만족을 느끼면 행복한 것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련만 우리는 자주 이 사실을 망각한다. 행복을 주는 파랑새를 잡으러 집을 떠나 먼 여행에 나섰던 나그네가 몇 년 동안 고생 끝에 빈손으로 돌아왔으나 자신을 반겨주는 가족에게서 그 행복의 파랑새를 발견했다는 서양의 우화에서 우리는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배우게 된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에서도 경제성장률이나 1인당 개인소득과 같은 물질적인 목표치보다 국민행복지수 또는 국민안전지수를 올해의 목표치로 제시하면 어떨까? 참신하지 않은가. 더불어 자살건수를 줄이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새해 사업계획으로 제시하면 국민이나 주민들이 행복에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업에서는 매출이나 이익 목표와 함께 종업원들의 복지와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목표치를 제시하고 노사가 함께 새해 결의를 다지는 행사를 열면 어떨까? 사장이 나서서 직원들에게 “여러분들이 우리 회사의 보배입니다!”라 덕담을 한다면 아마도 그 회사는 크게 번창할 것이다. 
을미년 새해가 일주일이 지났다. 새해를 맞아 주위 사람들에게 덕담을 할 기회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또한 새해를 맞아 스스로 소망하고 결심하는 바가 새로울 것이다.
상대방의 복을 빌어주는 덕담이 오가는 미풍양속을 이어가되 그 복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복이 아니고, 자기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는 행복이 되기를 바란다. 나라의 보배는 국민이요, 주민들이 지자체의 보물이 되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우리들이 꿈꾸는 세상이다. 

“부안군민 여러분!”, “부안독립신문 독자 여러분!”
“새해 복을 많이 찾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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