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신문인데 따뜻한 칼럼 좀 부탁합니다.”
  IT시대, 허공을 떠도는 수많은 언어를 헤치고 필자에게 전해진 메시지다. 언어에는 그 사람의 철학과 심성이 담겨 있다. 그가 평소 따뜻한 사람이라서 따순 칼럼을 청탁한다고 생각하기엔 세상 돌아가는 게 석연치 않다. 연일 뉴스에 회자되고 있는 부도덕의 신물에 독자들 역시 따뜻한 얘기가 그리운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기실 터덕거리는 대한민국의 바퀴를 보면 기운 빠지는 게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의 정치 철학은 차치하고라도 침몰한 세월호에 이어 회사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사원을 머슴처럼 생각하는 전 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대한항공의 조현아‘땅콩 리턴’사건과 그 치졸함을 옹호하려다 발각된 정부부처와 도덕성마저 상실한 만만회 정윤회로 이어지는 파렴치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일 수도 있겠다. 더하여 이제 6개월이 지난 지자체 권력 이월에 따른 후유증 등 산재해 있는 현안들 때문일수도 있겠으며, 아니면 한 해를 마감하는 지면인 만큼 따뜻한 얘기로 마감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일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언론보도를 종합해 볼 때 비열한 통치 메커니즘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임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얘기가 따뜻한 얘기일까. 필자는 한참 동안 손전화기에 새겨진 메시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독립신문에 실린 지난 일 년의 칼럼을 돌아보았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농업, 예술 등 사회 전반에 대한 필진들의 다양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대개는 불특정 다수의 입장에서 바라본 사안들이었다. 때문에 ‘갑’의 입장으로 비견되는 국가를 비롯한 단체와 이해 당사자 및 추종자들에겐 곱지 않을 수 있겠으나, 따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필진의 열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직언 또한 따뜻한 얘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글 중에서 나는 피로 쓰인 것만을 사랑한다.”라는 니체의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한 피는 곧 정신이다. 니체에게는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극히 인간적이고 거대하며 잔인한 ‘짜라투스트라’를 탄생시켰을 것이다. 이처럼 정신은 새로운 가치 구현을 있게 하고 대상에 대한 세계 인식의 진경을 넓힌다. 필진들이 칼럼을 통해 바라본 세계는 이 시대의 보편적 가치 현안들이었으며, 몇몇 칼럼은 피로 쓴 흔적이 역력했다. 이처럼 가장 민중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진리일 수 있다는 겸손한 정의 하에 독립신문의 올 한 해 칼럼은 다양한 이슈를 그 소재로 삼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휴머니티의 비중이다. 시사칼럼의 성격상 시사에 관한 이슈에 그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겠으나 이 또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이야기이므로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과 자연에 대한 관조와 흐름까지도 어우러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해처럼 따뜻함이 있어야 세상을 살리고 사공이 능숙해야 배에 탄 사람을 살릴 수 있듯 칼럼은 시대를 비추는 소박한 등잔이며 때로는 사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필자는 일전에 부안상설시장 상인대학에서 “자서전 속 문학이야기”라는 주제로 인문학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곱은 손을 주무르며 늦은 시간까지 강의를 듣는 상인들 눈에서‘神을 민중 속에서 보았다.’라는 간디의 말에 대한 의미를 다소나마 느낄 수 있었다. 현대는 어느 시대보다 자연과학이 발달한 시대다. 그 결과 현대인은 무서운 속도로 달린다.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 생각할 겨를 없이 달린다. 이러한 경험적 실증은 지식 습득과 과학문명을 양산하여 생활의 편리를 제공했으나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소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간은 합리와 경험만으로 사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사람에겐 지적인 세계 위에 정적인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적인 것은 지식으로 정의 될 수 없는 것이다. 벌이 캄캄한 암흑 속에서 꿀을 모으고, 나무뿌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푸름을 밀어 올리듯 사상은 가장 은밀한 곳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다. 벌과 뿌리처럼 시장 사람들이 곧 인문학적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삶 자체가 곧 사상의 시원이지 싶다.
  인문학이나 사상이란 게 별게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사람의 이야기며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시장 모퉁이에서 시금치와 무 몇 개를 놓고 사람을 만나고, 손자에게 따뜻한 붕어빵 하나 안겨주려는 할머니의 마음이 곧 인문학이다. 결국 시사적인 것이나 정치도 이 할머니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문명의 속도를 붙잡는 노점 할머니의 뭉툭한 손에 털장갑 하나 끼워주고 싶은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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