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한 대를 놓고 예능과 드라마, 영화와 스포츠 채널 사이에서 부부는 가끔 채널 전쟁을 한다. 상대방 선택 채널을 억지로 같이 보다가, 가끔은 좋은 프로나 영화를 만나면 서로 울고 웃고 즐기기도 하지만 매번 갈등은 지속된다. 갈등 해결은 간단하다. TV 한 대를 더 사서 각자 보는 것이다. 결국 TV를 한 대 더 구입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허나 한 대를 놓고 계속 싸움을 하기로 결정했다. 며칠 전 아내마저 애들 일로 잠시 서울 가던 날, 밖에서 저녁을 먹고 불꺼진 캄캄한 빈 집에 들어서는데 영락없이 시골 독거노인이다. 내려온 아내에게 그날 심정을 토로했더니, 그렇잖아도 TV를 두 개 사면 각방에 익숙해져서 둘이 더 서먹하게 된다고 사람들이 말리더란다.
  막내가 졸업하면 둘만 남는다. 애들 셋이 모두 나가면 각자 살던 방은 모두 빈다. 남은 빈방은 찬 공기를 담은 체, 도시의 좁은 원룸 주인이 돌아와 쉴 날만을 기다린다. 도시에는 갈수록 냉장고, 세탁기, 전기밥솥 등의 살림도구가 채워지고 완전한 단독가구 하나가 만들어진다. 수시로 도시와 시골을 왕래하지만, 각각의 집을 잠깐씩 방문하는 꼴이다.
  자본과 문명은 그렇게 사람과 언어를 멀리 보내는 첨병 역할로 날로 그 기세를 높이고 확장해 온다. 7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화는 친한 관계의 이웃, 친지, 가족을 분리시키고 독립시켜왔다. 일본은 향후 20년이 지나면 40% 정도가 나홀로 가구가 된다고 하는데 우리도 바로 뒤를 따를 것 같다. 그렇게 자본은 간극을 만들고 그 사이를 자본이 생산한 물건들로 채워 온다. 사람과 사람이 분리될수록 유통은 더 활발하다. 이웃집 비닐하우스 상추도 대도시 도매시장을 거쳐서 동네 마트에서 구입하게 된다.
쿠바 여행 도중, 고속도로에서 화물차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미국의 경제봉쇄, 그리고 소련의 붕괴로 지원이 끊기자 극심한 경제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이 자급자족의 경제를 만들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들은 지역단위로 많은 것들을 해결하고 있었다. 한집에 큰 아들과 둘째 아들 부부가 같이 살면서, 아침과 저녁은 큰 아들네가 하고, 숙박과 저녁은 둘째네가 하면서, 작은 규모의 민박도 역할을 나누어 오순도순 사는 모습이 바로 그러한 자급자족의 구조에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50여 년 전 부유한 사람들이 버리고 간 주택을 정부가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탓에 한 건물에 열다섯 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살기도 한다.
그들은 분명 우리보다 많이 가난하다. 하지만 세계 7위의 삶의 만족도에서 보듯이, 현재의 쿠바인들은 여전히 대다수가 행복해 보였다. 쿠바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의료와 교육 등을 정부가 책임진다. 먹거리의 기본이 되는 밀가루에서 닭고기까지 정부가 공급을 해준다. 
 평생 벌어서 집 한 채 얻기 힘든 우리나라, 매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전세 값에 밀려 옮겨 다니는 우리의 현실에서, 정부가 집을 고쳐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쿠바의 주민은 불행한 걸까? 그럼에도 집 걱정은 안하니 행복한 것일까? 대책 없는 저출산으로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인구소멸 1호국가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데, 수십조원 퍼붓고도 출산율은 제자리라고 한다. '싱글세(저출산율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정부의 안으로, 1인 가구에 부과하는 세금)'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 발상을 코웃음으로만 넘기기에는 마음이 쓰리다.
  정답은 없다. 다만 선택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라기보다는 보완할 점과 개선할 수 있는 것 노력해야 할 것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노력 요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를 살리라고 뽑아준 경제대통령(?) MB가 경제를 거덜내는 것에서 보았듯이, 국민들이 감시하고 깨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통치자들이 알아서 해주는 일은 유사이래 없다. 지금도 '개발만이 살길이다'라고 선거 때마다 표를 주곤 하는데, 그렇게 개발해서 남은 것은 실업과 농촌공동체 붕괴 뿐이다. 이제는 작지만 그리고 더디지만 지역의 문화와 공동체를 중심으로 작은 상생과 협력을 중요하게 실천할 수 있는 지도자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봐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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