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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주민참여예산제가 장난인가

부안군은 지난 18일 부랴부랴 2015년도 예산편성에 따른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현행법과 조례에 명시된 예산편성 과정의 한 절차였다. (본지 11월 13일자 1면 기사 참고)
군청 대회의실에 모인 200여명의 주민들은 주민참여예산제와 예산용어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올해 재정상황과 내년도 예산편성 방향에 대해 개략적인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날 행사는 주민참여예산제라기보다는 주민구경예산제에 가까웠다.
이는 비단 올해만의 일은 아니다. 부안군은 이 제도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설명회라는 이름의 요식행위로 치르면서 주민을 철저하게 구경꾼으로 전락시켰다. 설명회에 참여한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마을에 얼마의 예산이 배정됐는지, 그 예산이 어떤 용도에 쓰이는지 알 수 없으니, ‘참여’라는 말은 남의 집 잔치에 끼어든 신세가 됐다.
주민참여예산제는 1989년 브라질의 뽀르뚜알레그레에서 시작됐다. 시 예산의 98%를 공무원 인건비와 시청 운영비로 탕진하는 바람에 주민들은 최소한의 기반시설조차 갖춰지지 않은 궁핍한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올리비우 두뜨라가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올리비우 시장은 취임 초기 시민들의 각종 요구가 줄을 잇자 시 살림을 전면적으로 공개하고 시민들과 만나 토론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주민참여예산제의 시작이었다. 요컨대 광장에서 시민과 격의 없이 토론을 나눈 한 문제적 인간의 출현이 세계 지방자치와 시민민주주의사에 큰 획을 그은 셈이다.
주민참여예산제 시행 이후 뽀르뚜알레그레 주거지역의 수도공급은 75%에서 98%로 확대되었고, 하수처리구역도 46%에서 98%로 대폭 증가했다. 또 92~95년 동안 주택지원은 2만 8862채에 달했고 학교도 29개에서 무려 86개로 3배가량 늘었다. 무엇보다 시민 커뮤니티 기반조직이 3000여개로 참여예산 시행 전보다 40%이상 불었다. 행정과 주민의 갑을관계가 수평관계가 되고 비로소 주민이 행정을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안군도 내년부터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제대로 시행하겠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현재 부안군이 입법예고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 시행규칙에 따르면 ‘주민참여예산위원회’를 구성해 현장방문과 토론회 개최, 주민제안사업 심의 및 우선순위 결정, 예산 홍보활동 등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읍면장 추천을 통해 15명 이내로 하겠단다.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뽀르뚜알레그레는 시 전체를 16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마다 지역총회를 두게 돼 있다. 지역총회에는 해당지역 주민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지역총회에서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한 4명의 평의원을 중앙의 포럼으로 보내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게 한다.
유럽에서 주민참여예산제가 가장 잘되고 있다는 독일의 리히텐베르그도 시를 13개 논의구역으로 설정하고 시민 누구나 해당 구역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또한 행정은 전체인구의 20% 선인 주민 5만 명을 대상으로 참여를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한다. 그 결과 참여 인원이 꾸준히 늘어 2013년에는 무려 10,488명이 주민참여예산제에 참여했다.
경기도 고양시도 일반 시민 50명과 예산전문가 11명을 공개모집으로 선발하고, 동별 지역회의에서 추천된 39명을 더해 총 100인의 위원회로 구성된다. 위원회는 6개 분과로 나뉘어 예산 편성에 대한 주민 의견 수렴과 예산절감을 위한 연구활동 등을 벌인다.
이밖에도 울산 동구, 서울 서대문구, 수원시 등, 주민참여예산제를 제대로 하고 있는 지자체는 읍면장 추천 15인 이내의 위원회와 같은 엉터리조직을 구성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각 지역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가 보장된 지역회의를 설치하고, 그 조직에서 대표를 2~4명씩 선발해 전체 모임에 보내는 방식을 택한다. 부안 방식이라면 ‘주민참여’가 아니라 ‘면장참여’가 될 뿐이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 사납다. 전 국민을 호갱님 취급하고 주권자가 넘어지면 국가가 친절하게 밟아주는 살벌한 세상이다. 바깥세상이 어지럽다 하여 부안마저 이런 본을 봐서야 되겠는가. 군민을 호갱님으로 만들 의도가 아니라면 부안군은 하루 빨리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설계를 백지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군민들도 부디 깨어나기를 바란다. 부안군의 예산은 부안 주민의 것이다. 자기 돈을 남이 멋대로 쓰고 있는데 일체 관여조차 안하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는 말자는 얘기다. 단언하는데, 참여하면 바뀐다.
 

우병길 편집국장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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