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기념식의 취지는 조촐했다. 주주와 독자를 모셔놓고 그간의 후원에 감사를 표하는 게 우선이었고, 우리 신문을 좋아하는 분이 이렇게 많다는 걸 과시함으로써 부안의 대표 정론지라는 명분으로 어깨에 힘 한번 주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은 부수적인 거였다.
잔치판은 신문사도 괜찮고 폐교 같은 공간도 나무랄 데 없다는 생각이었다. 읍내 거리 한켠을 차지하고 돼지 한 마리 잡아 난장을 벌였어도 무람없을 일이었다.
그런데 주위에서 도와주겠다는 분들이 다채로운 훈수를 두면서, 또 복잡한 의사결정 절차를 거치면서 기념식은 점점 조중동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타이틀에 ‘후원의 밤’이 추가되고, 만원짜리 티켓이 발행되고, 저녁을 뷔페로 준비하고, 초청가수를 모시기에 이르렀다.
솔직히 준비하는 내내 거북했다. 하지만 막상 행사가 끝나고 나선 외려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정갈한 공간에서 점잖은 인사가 오가고 최상의 축하와 덕담이 관계를 덥혔다.
기념식 분위기만 보자면 부안독립신문이 이제부터 폭발적인 성장을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성장. 10년간 적자의 나락에서 허덕이던 우리 신문으로서는 얼마나 간절한 단어던가. 기왕 벌인 기념식이 모쪼록 성장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10주년 특집호를 만들기 위해 창간호를 뒤적인다. 눈에 띄는 글이 있다. 한때 광적으로 좋아하던 (아니 질투하던) 작가 최성각은 부안독립신문이 세상에 나오던 날 이런 축사를 썼다.
“......신문을 키우려 하지 말라. 키우면 망한다. 소수자본이 아니라 부안 사람들이 주인인, 작고 매운 신문이 되어 부안 사람에게는 직시함으로써 얻을 자유와 희망을, 자본과 권력에게는 두려움과 각성을 촉구하는 매체가 되어 달라. 앉으나 서나, 비바람이 불고 폭풍이 닥쳐도 창간 때의 소명을 잊지 말라. 부안독립신문이 성공하면 이 나라, 희망이 있다”
젊은 날 그의 문장을 읽으며 목울대가 시큰거릴 정도의 열등감을 느꼈었는데, 나이 오십을 넘겨버린 지금 누렇게 변색된 신문지에 박혀있는 그의 짧은 문장에 또 다시 알 수없는 열패감으로 현기증이 도진다. 빼도 박도 못하게 그가 옳다.
사실 우리 신문사 욕심낸 적 없다. 신문 찍어 팔아 건물 올릴 생각 해 본 적 없고 종사자들 조중동 버금가는 연봉 받겠다고 애면글면 한 적 없다. 그저 적자나 안보고 들어오고 나가는 돈이 똔똔만 되도 좋겠다는, 참으로 소박한 꿈을 꿔왔다. 그런데 손님이 다 돌아가고 잔치상을 걷은 지금은 그마저도 욕심이었다.
최성각은 ‘부안 사람들이 주인인’ 신문이 되라고 했다. 실제로 우리 신문은 부안 사람들이 종자돈을 대서 만든 시민신문이다. 따라서 최성각의 주문이 아니더라도 우리 신문의 존폐는 부안 사람들이 결정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 명료한 사실을 여태 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10년간 내리 적자를 봤다는 것, 그래서 누적된 미납구독료를 계산해보니 1억 5천이더라, 2억이더라, 하는 메시지는 그래서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끼리는, 입버릇처럼, 기사를 쓰고 광고를 따고 적자까지 메꾸면서 부안을 위해, 부안사람들을 위해, 공동체적 가치를 위해 희생하는 줄 알았는데, 신문 밖에 있는 진짜 주인들의 생각은 우리와 달랐던 모양이다.
이제 신문을 진짜 주인인 시민께 돌려드려야 한다. 흥하던 망하던 그분들이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우리 신문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며 독설과 아집으로 구린 냄새를 풍긴다면 주인은 단호하게 끊을 것이고, 권력과 맞서 굴하지 않을 싹수가 보이고 자본에 초연할 배포가 느껴지면 온전히 맡겨줄 것이다. 부안 사회가 견제나 감시 따위가 필요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고 판단한다면 외면할 것이고, 그나마 깜냥껏 빨빨거리며 감시의 선봉에 설 신문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우리에게 의지할 것이다. 빈말이 아니라 부안 시민의 판단을 전적으로 믿는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신문을 주인의 품으로 돌려드리는 의미에서 이제부턴 대표를 비롯해 일부 이사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는 ‘쌩돈 꼬라박기 경영’을 포기했으면 싶다. 대표가 기념식 인사말에서 신랑이 한 부 보면 각시가 한 부 보고, 안방에서 한 부 보면 화장실에서 한 부 봐달라고 간절하게 말했다. 호소도 그만하면 할 만큼 했다. 이제 군민에게 맡기자. 직시를 통해 부안 사람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안기는 것도, 자본과 권력에게 두려움과 각성을 촉구하는 것도 그 다음 일이다.
최성각은 “부안독립신문이 성공하면 이 나라, 희망이 있다”고 했지만, 어찌 알겠는가. 성공이 독이 될 수도 있고 실패가 약이 될 수도 있음을. 다만 최성각이 운운한 ‘성공’이 함의한 바를 모르지 않기에 이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은 참 오지게 무겁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