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에는 ‘금연’이 대세다. 과거에는 영화관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금연 팻말이 곳곳에 넘쳐난다. 대형 음식점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술집에서도 온통 금연이다. 드디어는 거리에서도 담배를 피우면 벌금 10만원을 매기는 곳이 늘고 있다. 담뱃값도 올리겠단다. 이래저래 애연가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바야흐로 금연사회로 접어들었다. 흡연자들에게는 불편하겠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라를 망쳐먹을 또 다른 ‘금연’이 대한민국에 난무하고 있다. 지연, 혈연. 학연도 지겨운데 금연까지 설쳐댄다. 담배규제 말고 ‘돈으로 얽힌 인연’ 말이다. 컴컴한 극장 안에서 금연은 연애금지란 뜻이라고 주장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요즘 방방골골에 나붙은 ‘금연’을 ‘담배 피지 말라’나 ‘연애금지’도 아닌 ‘돈으로 맺은 연분’이라 해석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 같이 (돈으로)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고 <하여가>를 부르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원래 이리저리 얽히며 산다. 원시사회에서는 혈연으로 모여 살며 다른 씨족과는 경쟁 또는 적대관계를 유지했다. 부족사회로 바뀌면서 여러 씨족이 모여 비교적 넓은 지역을 공유하며 지역 단위 동질성을 만들어 갔다. 지연의 시작이다. 오랜 기간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혈연과 지연에 비해 학연은 그 시작이 짧은 편이다. 고대국가에서 군주는 효율적인 지배를 위해 관리들을 등용했다. 이들 관료들은 각자의 학맥을 통해 세력을 키워나갔다. 학연의 시작이다. 지금도 이 세 가지 인연은 개인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특히 동양문화권인 한.중.일 삼국에서 두드러진다. 그 중에서도 법조계나 관료사회가 유독 심하다. 정치계 또한 이들 못지않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패거리문화에 절어있다. 부처님도 인연을 소중히 하라고 했다. 어떤 인연이든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정을 나누며 상부상조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문제는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다. 심한 경우에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거나 위법한 일을 저질러도 끼리끼리 감싸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집단이기주의가 집단에 소속된 각 개인의 염치나 양심까지도 마비시키는 것이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패거리문화의 적폐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전관예우 때문에 국무총리 지명자가 도중하차했고 낙하산 인사도 끊임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관피아가 공분의 대상이 됐다. 박 대통령도 선거 공약으로 국민대통합을 내걸고, 탕평인사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까지 행태로 보면 ‘혹시나’가 역시나‘로 끝날 공산이 크지만 아직 대통령의 임기가 적잖이 남았으니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그녀가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패거리문화는 혈연, 지연, 학연 만 있는 게 아니다. 이 세 가지 연분에 더하여 ’금연‘이 있다. 돈으로 얽히고설킨 연분이다. 이 금연은 나머지 세 가지 연분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돈 때문에 혈육이 원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돈 되는 일이면 적도 아군도 없다. 동아줄 같은 돈 앞에서는 지연, 혈연, 학연 모두 지푸라기에 불과하다. 전관예우와 낙하산은 결국 돈으로 환산해 거래된다. 공천도 차떼기 헌금이면 보장 받는다. 종교계 역시 헌금 많이 내는 신자가 대접을 받는다. 가난한 신도는 업신여겨질 뿐 아니라 적대시 당하거나 혐오의 대상까지 된다. 우리 사회는 천민자본주의를 넘어 현금만능사회가 되었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돈을 네 목숨처럼 사랑하라’로 바뀌었다.
권위적이고 독재의 향수가 벤 국가개조 대신 쓰기 시작한 이른바 국가혁신은 이 금연을 타파하지 않는 한 성공할 수 없다. 돈이 곧 권력이요 가치의 전부인 금권사회를 사람이 존중 받고 서로가 서로를 두루 사랑하는 인권사회로 바꾸어야만 국가혁신이 비로소 가능해 진다. 혈연, 지연, 학연은 금연 앞에서 한갓 애교에 불과하다. 금연이 나라를 망친다. ‘금연’ 딱지를 온 나라에서 당장 모조리 걷어내라. (추신 : 담배는 건강의 암 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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