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후보자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며, 이조 500년을 허송세월했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망언을 한 사실이 지난 11일 KBS <뉴스9>에 보도되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여당에서조차 공개적인 사퇴요구가 나오고 있고, 여론을 의식한 청와대는 인사청문보고서 제출을 늦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KBS의 보도였다는 사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세월호 참사에서 ‘기레기’로 낙인찍히고 현장에서도 추방되어야 했던, 그래서 ‘청영방송’이니, ‘개빙신’이니 하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했던 KBS였는데 말입니다.
  ‘청영방송’의 주범으로 지목됐던 길환영사장이, 여당측 이사가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이사회에서 해임의결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언론들은 세월호 사건을 제대로 다루기는커녕, 오보와 왜곡, 선정주의, 회피로 일관했습니다. 피해자가족의 의견을 억압하면서 정부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했습니다. 국가권력은 각종 의혹을 제기하던 시민들의 비판을 이른바 ‘괴담’으로 지목했고, 관제화된 언론은 확대재생산했습니다.
  하지만 모두의 이목을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각종 증언과 증거들 속에서 재현되고 재구성된 ‘세월호’의 진실은 자본과 권력 그리고 언론을 향해 ‘존재의 의미’를 물었습니다. 공고할 것만 같았던 권력과 자본, 언론의 카르텔이 정당성의 위기에 휘말린 겁니다. 이들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언론사 내부의 자성목소리와 함께 급기야 길환영사장 전격 해임과 그날의 <뉴스9>이 탄생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그래섭니다. 이번 일로 ‘청영방송’이었던 KBS가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자크 랑시에르는 “모든 통치행위는 자발적으로 공공영역을 줄이려 하는 경향과 그것을 통치권 내부로 흡수하여 사사화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 통치행위는 개인적 영역, 즉 국가 외부 행위자들의 관여와 그들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을 거부하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이번 사태를 읽는 키워드이자 앞으로의 대응방향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단순히 대통령의 영향력을 차단할 것이 아니라 그 영향력에 맞설 수 있는 시민권력을 창출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 한 사례가 수신료에 대한 시민적 통제입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전기료가 납부되는 자동이체 계좌에서 수신료가 강제로 납부되고 있습니다. 수신료를 두는 이유는 그것이 ‘공영방송’의 재원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기대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공영방송제도’입니다. 준조세성격의 수신료를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문제는 해당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못했을 경우, 이를 시민들이 통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KBS가 수신료인상에 있어 시민여론보다 정부나 국회의 눈치를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강제납부방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 수혜자인 공영방송의 언론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실제로 대표적 공영방송인 영국 BBC의 경우 납부의무만 있을 뿐 강제납부가 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위기에 처한 KBS의 정당성을 복구하는 싸움은 결국 공정한 뉴스, 공영방송다운 진실의 저널리즘을 구축하는 내부의 투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사장선임이나 이사회 지배구조 개선 논의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구요. 하지만 그것도 시민들의 행동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정치권력의 자리를 시민권력이 대체하지 못하는 한 악순환은 계속될 뿐입니다. 이 점이 오늘 ‘공영방송’ KBS를 말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작권자 © 부안독립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