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잔인한 달이 5월까지 물러가길 거부했던가 보다.
화면을 보는 그 순간 어린 생명들이 절규했을 현장을 그저 안방에서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3백여 생명에게 삼가 조의를 드리며, 기울기 시작하면서 선미로 모든 생명을 표현했던 다큐처럼 아직도 줄거리로 잔상이 남겨져 있다. 이처럼 국가에게 국민이 있었는지 라는 근본적 물음까지도 던져야 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정부에게 기댈 수 없다는 촛불이, 조문이, 퇴진이, 책임이, 전국의 메아리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지난 60년의 한국사회를 세월호는 우리에게 이것이 아님을 드라마로 전달해 주듯이 뉴스는 끊임없이 스토리를 전개해 주고 있다. 성공을 향해 수단과 방법은 뒤로 한 채 말이다.
너무 일찍 터트린 와인에 우리 자신이 우리나라가 포장하기에 바쁜 상태로 마라톤이 아닌 속도전에 온 국민이 투입된 결과라 하겠다. 이젠 돌아보고 내다보라 한다. 대한민국호의 안전한 항해를 위하여. 어떻게 말인가?
그 하나는  중앙에서 서울에서 정부에서 전국의 행정을 경제를 사람을 통솔 통제하려는 중앙집권시스템을 놓아 주어야 한다. 지역과 낮은 곳과 시민 속에 한국의 경쟁력을 다양화 해주도록 네트워크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시기이다. 아니 다시 거스르고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사회의 조직문화의 문제가 무조건 상명하복이라는 것과 웃사람의 기득권, 상사의 기득권, 그리고 권위의 기득권을 그대로 사회적 의사 결정화로 고착화 하고 있음이다. 의견의 다양성에서 오는 결정의 중요도 보다는 과정의 중요도를 존중하는 사회적 문화의 정착이 있어야 한다.
다음은 시민단체 역량상승을 넘어선 시민사회의 사회적 역할 확대를 위한 시민교육과 활동의 지원이 절실하다. 깨어 있는 시민의 역량이 조직사회와 지역사회와 한국사회의 위상을 높여나가는 시작이다. 아울러 학교교육과 사회교육과 가정교육의 조화가 홍익인간의 기본을 담고 가는 균형된 교육이기에 칠판에 쓰고 베끼고 시험으로 평가 받기보다 지역과 사람이 스승도 될 수 있음을 건강사회의 교육 정책도 우리를 변화해야 하는 숙원이기도 하다.
또 하나 00피아가 가장 많이 거론 되었던 유람선 하나에도 이렇게 부패 고리가 서로를 그물망처럼 얽혀져 있어 반부패 척결을 위한 부패방지법과 내부고발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조직과 사회의 건강성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귀감을 창출해 내는 시작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가통치의 수혜 소비자는 국민이다. 기업이 가장 공을 들여야 할 소비자도 국민이다. 군인과 경찰이 존재하는 최고의 수혜자도 국민이다. 국가의 개조도 위로부터 보다는 아래로부터 의식의 시작과 실천을 통하여 국민의 권리가 정당하게 창출되도록 지원자의 역할이 정부의 역할이지 미개한 국민을 채찍으로 달리게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다양성 못지않게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와 다양성에도 다른 국가들 보다는 앞서 있다 하나 그 종교의 사회적 책임 문제이다. 국민의 정신적 안정과 건강성에 기여하는 종교가 이번 세월호에 연관된 구원파라는 종교의 조직성을 보면 이렇게 폐쇄성과 자기종교 중심주의와 회계의 사용시 건강성의 유무를 결정할 때 민주적 결정이나 다시금 사회에 건강한 사업에 환원하기보다 개인의 신격화는 또 다른 종교의 이미지 정착에도 문제가 있음에 종교의 사회적 책임론과 소위 사이비성 종교를 통한 국민의 재산상 정신상 문제를 규정하고
제제하는 규정도 필요하다.
그래서 세월호의 아픔은 한국사회을 다시 돌아보고 내다보게 하는 시작이며 그분들의 희생의 촛불이 균형적 건강성과 리더쉽의 건강성, 교육의 건강성, 미래의 건강성을 밝혀 주는 촛불등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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