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1급 시험에 합격한 집념의 75세 할머니

   
 
약속된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정춘자 어르신이 마당의 트랙터를 가리키신다.
“나 인터뷰 하는 거 보다 저 트랙터 이야기나 써 봐요. 저 트랙터가 엄청 오래된 트랙터거든. 트랙터가 처음 나왔을 때 바로 그 때 산 트랙터야 저게. 30년은 됐당께. 지금은 부속이 없어서 고치기도 힘들어. 할아버지가 워낙 솜씨가 좋아서 잘 관리하고, 고치고 혀서 지금까지도 쓰고 있어.”
잘 새겨보니 할아버지 자랑이시다.
-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셨다고 해서 맨날 공부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농사일도 많이 하시나 봐요?
“그냥 있는 땅이라 아까워서 쬐끔 하는 거지 뭐. 논 8필지하고, 밭 700평 짓고 있어. 논두렁에 콩이랑. 그래서 농사철이면 노인대학에 가지도 못하고 그냥 집에서 공부하는 때도 많어.”
배포가 여간 아닌 분들이다. 8필지 농사를 우습게 아시는 70대 노인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 공부하는 데 한(恨)이 있으셨다고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중학교를 안보내주는 거여. 그래서 어린 생각으로 돈이 없어서 그런가부다 하고, 우슬재에 가서 나무도 해다 팔고, 남의 집 홀태질도 하고, 열심히 돈을 만들어서 중학교 원서를 내려했더니 집안이 난리가 난거여. 여자는 배우면 안된다고 허드라고.”
참 아픈 시대를 지내왔다. 그 때부터 어머니따라 가마니 길쌈 짜고 새끼 꼬며 농사 일을 하면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다가 17살 나이에 시집을 오셨단다. 딸 둘 아들 둘 낳고 대학까지 가르치고 시집 장가 다 보내니 어느덧 여유 있게 숨 쉴 시간이 왔더란다. 그 때 나이 67세. 그 때부터 부안복지관 노인대학에서 8년 동안 한자 공부를 해오는데, 차츰차츰 5급, 3급을 따고, 2012년 4월에 2급에 합격하고, 드디어 2014년 4월, 2년 동안 준비해서 1급에 도전, 자격을 취득하였다.
- 쉽지 않은 자격이라고 들었는데, 일도 그렇게 하시면서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하신거예요?
“밤 먹어도 한자가 생각나고, 누워서 천장을 봐도 한자가 생각나는 거지 뭐. 모든 글자를 1,000번씩은 써 봤을 거여. 2급에 합격하니까 복지관에서 1급 책을 주더라고. 그걸 받아왔으니 그 책임도 있고 혀서 악착같이 한번 혀봤어. 그것도 우리 영감님이 많이 도와줘서 이것도 헌거지 영감님이 안 도와 줬으면 어림도 없지. 따뜻한 데에서 공부허라고 형광등 스탠드도 사다 주고, 다 영감님 덕분여.”
공부한 책을 보니 손때가 많이 묻어있고 여기저기 헤져 있었다. 한편 인터뷰를 구경하던 남편 박환덕(77세)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머리도 정말 좋다고 한말씀 거드신다. 장구를 배울 때 장구가락을 다 외우는 것을 보면서 참 똑똑허다고 생각했단다. 집안 분위기를 보니, 두 분이 서로 존경하고 고마워하고 배려를 잘 하시는 것 같다. 물론 건강도 좋으시다. 이 분위기가 합격 비결 같다.
- 한자는 1급까지 따셨는데 다음엔 뭘 배우실 건가요?
“영어를 배우고 있어. 이틀 만에 알파벳을 다 외웠다고 선생님이 칭찬도 해주시더라구. 이젠 영어에 도전해 보려고 혀.”
참 의욕 대단하시다.
- 참 근데 한자 공부를 하니 쓸 데가 많던가요?
“무슨 쓸 데가 있겄어. 아무 쓰잘데기는 없는데,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서 한번 해본 거여.”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이 시대에서 공부라는 것이 뭘까? 쓸모없는 것을 암기하는 능력을 확인해 보는 용도 외에는 없는 것일까?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일까? 아니면 지금까지의 삶을 반추하고 생각해보는 문학이나 경학일까? 할머니는 정말 쓸모 있고 가치 있는 공부를 찾을 수 있을까? 노인 대학은 그것을 찾아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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