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그림이야기


   
 
꽃그림이야기

어린 시절 늦은 가을날 유난히도 빨갛게 물든 나뭇잎이 나의 발밑으로 날아왔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몇 개의 나뭇잎을 골라 책갈피 삼아 두툼한 책속에 눌러놓았다. 한겨울이 되어 흰 눈이 내린 어느 날 어쩌다가 펼쳐든 책속에서 책갈피 낙엽은 가을을 간직한 채 그대로 날 반겨주었다.   
“꽃누루미” 또는 “누름꽃”이란 고운 우리말을 가진 압화(Pressed Flower)는 주변에서 발견되는 모든 식물의 꽃, 줄기, 잎, 씨앗, 뿌리, 껍질 등을 물리적인 방법으로 눌러서 상하지 않도록 수분을 제거하고 입체적인 모양을 평면적인 모양으로 만든 후 이를 재료로 생활용품의 장식에 쓰거나 회화적인 느낌을 강조해서 그 자체의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낙엽이나 들꽃을 책사이에 끼워 빳빳하게 만들거나 창호지문을 바를 때 단풍잎, 국화, 코스모스를 넣어서 문을 장식한 것도 압화의 간단한 형태라 할 수 있다.
부안에는 유달리 압화공예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농업기술센터나 여성회관, 교육문화회관 같은 곳에서 열리는 평생교육 프로그램 중에 압화공예가 일찍부터 개설되어 있었고 또한 부안이 가지는 자연 지리적 요건이 압화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란다.
부안의 압화동아리 “꽃그림이야기”는 앞서 말한 주부대상 평생교육프로그램 수강생들이 초보과정을 졸업한 후에 좀 더 깊이 압화를 해보고 싶어서 만들게 되었다.
지난 2011년 대한민국압화대전 대상을 수상한 전은숙(47)씨가 이모임의 회장겸 선생님이다. 회원은 10여명이 활동 중이며 매년 마실축제 때 스포츠파크 실내체육관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으며 작년에는 부안군청로비에서 “꽃으로 향기 내어 그리다”라는 감수성 넘치는 제목으로 회원전을 열어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변산 대명리조트에서도 여름 한 달간 초청작품전을 열어서 부안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부안의 압화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수강생이었던 회원들도 이제는 서로 조언을 해주는 동반자로 성장해 주었다.
 “꽃그림이야기”의 특징은 인공적인 염색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같은 꽃이나 잎이라도 채취하는 시기를 달리하면 얼마든지 색을 달리 할 수 있어요. 그 미묘한 차이를 통해서 원근감과 명암을 나타내죠. 화사한 색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염료를 사용하지 않아요”
“힐링이라는 단어가 넘쳐나지만 진정으로 저는 압화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정말로 치유 받은 것 같습니다.” 정확히 병명도 알기 힘든 혈액관련 병을 앓으면서 전회장은 많이 아프고 힘들었다고 한다. 압화를 시작하고 그 세계에 빠져들면서 세상에는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생겨나는 것과 사라져가는 것들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한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새싹을 보면서 기뻐하고, 꽃누름 재료를 준비하고 상상했던 대로 잘 말려진 꽃이 많아질 때 부자가 된 듯하며 그 재료 하나하나를 가지고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까지 매 순간 순간이 즐거우니 몸은 저절로 좋아지더군요”
압화를 하면서 우울증이나 갱년기장애같은 것들도 가볍게 떨쳐버리는 것을 주위에서 많이 봤다는 전회장은 압화를 통해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심리치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오감을 통해서 변화하는 자연을 느끼고 사랑하게 하는 것 그리고 내가 바로 자연의 일부임을 일깨워주는 것이 압화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이런 훌륭한 선물을 받는 이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지금 보다 훨씬 좋아 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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