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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적인 이야기
  • 황재근 전북문화저널기자
  • 승인 2013.10.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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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정책과 관련해 여러 지자체들을 취재하다보면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바가 있다. “결국 지자체장의 의지에 달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지라는 것은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 자율성과 독립성의 보장, 전문인력의 확보 등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다른 분야도 각기 사정이 있겠지만, 유독 문화예술분야에서 ‘지자체장의 의지’란 모호한 말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이 분야 자체가 비용을 산정하기 모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깔거나 하는 일들은 필요한 비용이 명확하다. 하지만 문화예술분야는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쓰는 돈이다. 전문예술인이든, 관련기관이든, 아마추어 동호회든, 얼마씩 줘야 얼마의 성과가 나오는지 도통 기준을 잡을 수 없다. 대체로 많이 쓸수록, 그리고 지속적으로 쓸수록 성과가 나오는 편이지만 꼭 그렇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다보니 대개 지자체의 문화예술분야 예산은 선심성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꼭 필요한 곳에 장기적 전망을 갖고 집중적 투자를 하기보다는 필요하다는 곳 모두에 잘게 쪼개 나눠주는 편이다. 그 결과로 투자에 따른 성과를 얻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정책적 결정, 정치적 선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현행제도 상에서 그 권한은 지자체장에 집중돼있다.
지자체 공무원은 지자체장의 성향을 따라간다는 말도 있다. 직·간접적으로 접한 바에 따르면 대체로 맞는 말이다. 공무원들이 일컬어 철밥통이니, 시키는 일만 한다느니 하곤 하지만 그것도 경우에 따라 다르다. 어떤 공무원은 강연에서 만난 국내 최고전문가에게 수차례 자문을 구한 끝에 그 분야의 고문으로 모셔오기도 하고, 어떤 공무원은 부족한 예산을 대신할 지원을 얻고자 중앙부처로, 기업으로 문전박대를 당하며 쫓아다니기도 한다. 이 사람들이 원래 특별한 사람들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그보다는 해당 지자체장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본다. 적성과 특기에 맡는 역할을 부여했는가. 그 역할에 합당한 권한을 쥐어줬는가. 실패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성공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켰는가. 이런 요인들이 인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별거 아니다. 회의시간의 작은 격려, 보고를 받으며 귀를 기울이는 태도, 성과는 담당자에게 돌려주고 책임은 자신에게 돌리는 말치레, 이런 동기부여에도 사람은 움직인다.
서울시에 근무하는 친구 얘기론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후 서울시 공무원들의 업무강도는 수직상승했다고 한다. 겨울이면 조를 짜서 노숙자들 형편까지 둘러봐야하고, 민원이 들어오면 즉각 담당자를 직접 불러 대면한다하니 어찌 피곤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공무원들의 사기는 높은 편이란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직접 시민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기 때문에 성취감도 높단다. 박원순 시장의 페이스북에 전국을 순회하며 지자체장을 맡아달라는 댓글을 보며 ‘한 사람의 역할이 이렇게 크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안과 임실의 지자체장이 또 다시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게 됐다. 왜 한번 이런 일이 생긴 지자체에서만 계속 같은 일이 생기는 건지, 안타깝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또 다시 두 지자체의 전략적 정책적 결정들은 미뤄질 테고, 행정공무원들은 그저 주어진 일만 하면서 다음 군수의 취임을 기다리게 될 터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갑자기 화가 나고 답답해졌다. 선거기간 며칠간 그토록 고개를 조아리며 달콤한 말을 하던 사람들에게 4년 동안 전전긍긍하기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자다가 일어나서 바뀔지, 점심밥을 먹다 문득 엎어질지 모르는 ‘지자체장의 의지’라는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지.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시민들의 역할, 시민단체의 역할, 지역언론의 역할에 달려있는 문제다. 전국 모든 지자체에 박원순 시장 같은 지자체장을 세울 수 없는 한, 행정조직이 지자체장보다는 시민들을 더 두려워하게 한다. 지자체장이 선거기간보다 재임기간에 더 시민들의 눈치를 살피게 만들어야 한다. 먹고살기도 바쁜 판에 오지랖 떤다 할 일이 아니라, 이런 오지랖을 떨어야 먹고살기가 나아진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은 지자체일수록 지자체장 한사람에게 주어진 권한은 막강하고, 그가 이룰 수 있는 변화가 더 크다. 사실 몰라서 못했던 일은 아니다. 알아도 하기 힘든 일이지. 그래서 원론적인 이야기다.

 

황재근 전북문화저널기자  ibuan@ibu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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