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도지킴이 임채영(48)씨

“제가 어렸을 때 위도에서는 김 양식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어업이 주민들의 생계 수단이었죠. 그 때 아버지도 조개잡이 배 선장을 했었어요, 위도는 자연경관이 좋고 노을이 참 아름다운 곳이죠. 지금 위도는 어업에서 관광으로 변화되고 있는 과도기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임채영씨는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무렵 위도를 떠나 타 지역에서 생활했다.
그의 인생길에서 위도에 머물렀던 기간은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위도를 지워낸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위도에 대한 사랑을 음악으로 풀어놓고 있다.
이런 임씨의 지난 인생의 발자국을 잠시 그려보았다.
임씨는 위도에서 태어났다. 위도초등학교 시절 탁구선수로 활약했고 3학년~5학년 때까지는 부안군 대회에서 출전해 위도 초등학교가 3년 연속 우승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던 중 개인적인 사정으로 5학년 2학기 무렵 전주 덕진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면서부터 고향 위도와 멀어지게 된다.
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 밴드부에 들어간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기타를 배웠던 것이 밴드부에 들어가게 된 동기가 된 것이다. 이때부터 임씨의 꿈은 음악인으로 바뀌게 된다.
임씨는 고교시절 밴드부에서 전자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전북예술회관과 학생회관에서 공연을 펼치며 음악인의 꿈을 키웠다.
당시 그의 꿈은 대학가요제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꿈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하늘로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가사는 점점 기울었고, 결국 그는 대학가요제의 꿈을 접고 산업전선으로 뛰어 들게된다.
임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다. 음악의 꿈은 잠시 접고 굴삭기 운전을 하며 생활고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음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생업과 다윗 선교단 단원 활동을 병행하면서 음악의 목마름을 채웠다. 그랬던 그가 마음속에 항상 품고 있던 고향 위도를 다시 찾게 된다. 지금으로부터 9년전인 2004년이었다.
고향 위도로 돌아온 것은 아픔이 있는 위도 주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안을 주고 위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위도는 수려한 해안경관과 왕등낙조, 일주도로, 갯벌체험 등 많은 관광상품이 있는 자랑스러운 고장입니다. 이처럼 수려한 해안풍경과 국민관광지로써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육지와는 동떨어진 섬이다 보니 문화예술적으로 많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작은 힘이지만 음악을 통해 위도를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싶은 게 저의 작은 바람입니다.”
이런 뜻을 담아 위도를 찾게 된 그는 처음에는 작은 평상을 무대삼아 노래를 부르면서 자연스럽게 모여든 관광객들과 호흡했다. 그러면서 임씨는 자연 풍광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는 위도가 된다면 관광객들과 위도주민들에게는 더 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이후부터 그는 매년 여름이면 음악캠프를 열었고 보다 체계적이고 규모가 큰 공연문화로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도 함께 펼치기 시작했다. 올해는 그가 한여름 음악캠프 문을 연지 열 번째가 되는 해이다.
8월1일~3일까지 열리는 공연을 준비하면서 위도를 찾는 관광객들 맞을 준비에 오늘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가 위도를 사랑하는 방법은 음악이다.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이 위도를 찾게 만들고 위도주민이 함께 어우러지고 화합하는 모습을 만드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아름다운 위도를 꿈꾸는 임채영씨. 그의 바람대로 환상의 섬 위도에서 펼쳐지는 한여름 음악캠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이서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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