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癸巳)년과 검은 뱀

2013년, 올해는 소위 계사(癸巳)년이다. 1월 1일 새해맞이 행사에서도 계사년, 2월 10일(음력 1월 1일) 설날에도 계사년을 말한다. 그런데 정작 계사년은 2013년 2월 4일(立春) 새벽 1시 13분에 시작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이 계사(癸巳)년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개 ‘사(巳)’의 뱀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그냥 뱀띠라고 할 일이지 계사년이라고 말해놓고, 앞에 있는 ‘계(癸)’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면 ‘계(癸)’가 좀 억울하지 않겠는가?
계는 열가지 천간(天干)의 마지막으로 음수(陰水)를 표현하는 것이다. 2012년, 임진(壬辰)년의 ‘임(壬)’과 더불어 수(水)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임(壬)은 양수(陽水), 계(癸)는 음수(陰水), 임계는 모두 수(水)이며, 색깔로는 검은색이다. 그러니 올해는 검은 뱀의 해이다. 흑사(黑蛇)!
임진년일 때에는 흑룡(黑龍)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올해 흑사(黑蛇)에 대한 이야기는 왜 이렇게 없는 것일까? 년(年)에도 등급이 있단 말인가?
선인들이 가르쳐준 내용은 임진년에는 바람이 많고, 계절 변화가 날짜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태풍이 3번이나 지나가고, 일찍 더워지고, 일찍 추워졌나보다.
올 계사년에는 화기운이 부족하여, 한기가 성행하며, 계절 변화가 날짜보다 나중에 나타난다고 한다(歲火不及, 寒乃盛行, 氣化運行後天 『동의보감, 천지운기). 이로 미루어보면 봄철엔 냉해가 우려되며, 금년 여름엔 그렇게 많이 덥지는 않으려나 보다.
정작 계사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내용이 아닐까? 선인들의 지혜는 이런 곳에 있다. 뛰어난 사람은 위 몇 글자 안되는 구절에서 많은 생각을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의사는 무슨 병이 발생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고, 농부는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 지 생각해 낼 수 있다.
그것은 흑룡의 이미지, 흑사의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다. 갑진년은 청룡이고, 병진년은 적룡, 무진년은 황룡, 경진년은 백룡, 임진년은 흑룡이다. 각각 60년만에 한번 온다.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아니며 육십갑자 중 진(辰)의 별명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여기에 현혹되어 심지어 이 때문에 출산율까지 늘었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다. 세계적으로 희박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뭐라도 용납할 수 있을 것같은 생각이 한편에 있기는 하지만, 상업적인 속임수에 휩쓸리는 세상 사람들이 내심 안타깝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모르기 때문이다. 왜 모를까? 안배우기 때문이다. 왜 안배우는가? 비합리적, 비과학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거기에서 벗어나지는 못하는가? 생활이고 문화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문화에서는 어느 정도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교육에서는 전통을 계승하지 않는다. 육십갑자에 대한 이야기는 간단하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을 것인데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결혼할 때에 사주(四柱)단자는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챙긴다. 생활과 교육의 괴리.
우리는 교육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었는가? 비합리를 버리고, 합리적인 것을 얻었는가? 흑룡에 놀아나는 것을 보면 그런 것같지 않다. 도리어 매해마다 특성이 살아있는 합리적인 내용은 버리고, 12지지(地支)의 이미지에 놀아나고 있으니 말이다.
흑사(黑蛇)는 흑룡(黑龍)에 비하여 비루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기호일 뿐이며 다를 뿐이지 열등한 것이 아니다. 현혹되지 않으려면 알아야 한다. 삶과 앎의 괴리를 극복해야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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